일상을 망치는 힘
* 이 글은 2025년 11월 22일에 발행된 바 있습니다. 브런치북 '도쿄 일상'에서 재발행합니다.*
볼링공을 잡았던 오른손 엄지손톱이 반쯤 찢어졌다. 손톱을 짧게 자르고 왔어야 했는데 깜박했다. 같은 조에 편성된 어른들의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살폈다. 네일아트를 한 손톱도, 나보다 더 긴 손톱도 있었지만 다들 문제가 없어 보였다.
- 엄지 손가락이 많이 아프네요.
내가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만지작 거라며 말했다. 같은 조 어른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을 뿐,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 나만 아픈 건가, 그렇다면 왜,라는 생각을 하는데 강사님이 우리 라인에 오셨다. 나는 참지 못하고 강사님께 엄지 손가락을 내보이며 물었다.
- 엄지 손가락이 아파요. 이유가 뭘까요?
강사님은 내 손톱을 보자 '아, 아' 소리를 내더니 말릴 새도 없이 자기 가방에서 밴드를 꺼내다 주었다.
- 지금 한 번 해볼까요?
나는 레인에 올라가 오른손으로 볼링볼을 잡아 올렸다. 하나, 둘, 셋, 넷 스텝을 밟아 볼링공을 레인 위로 던졌다. 역시나 엄지 손가락에 통증이 있었다. 엄지손톱은 조금 더 찢어져 있었다. 나는 너덜거리는 손톱을 뜯어내고 강사님이 주신 밴드를 붙였다.
- 어때요? 지금도 아팠죠?
강사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사님이 자신을 보라며 볼링공을 들고 레인 위해 섰다. 볼링공을 잡은 오른팔을 가볍게 앞뒤로 흔들었다.
- 이 반동을 이용해 공을 움직여야 하는데, 볼링공을 던질 때 힘을 써서 그래요.
강사님은 한 번 더 레인 위에서 볼 잡은 오른팔을 흔들다가 감아올리고 스텝을 밟았다. 마지막 스텝에서 유연한 동작으로 팔을 앞으로 뻗으며 볼을 던졌다. 물 흐르듯 아주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 다시 해봐요.
강사님 말에 볼링공을 들고 레인 위에 섰다. 오른팔을 가볍게 앞뒤로 흔들어주었다. 그 힘으로 볼 잡은 손을 감아올리고 스텝을 밟았다. 마지막 스텝에 강사님의 말씀과 동작을 떠올리며 팔에 힘을 뺐다. 거짓말처럼 엄지손가락이 아프지 않았다. 게다가 스트라이크라니. 놀란 내가 뒤돌아 서자 강사님은 내 얼굴만 보고도 내 안에서 일어난 깨달음을 안 것처럼 웃었다.
- 좋아요. 지금처럼 그렇게 해야 해요, 자연스럽게. 억지로 힘을 쓰면 안 돼요.
지난 9월, 시에서 운영하는 볼링 수업을 다시 떠올린 것은 작은 아이와의 일 때문이었다.
며칠 전, 나는 아이와 매일 전투처럼 해치우던 수학 문제집 풀기를 그만두었다. 매일 하교한 아이는 간식을 천천히 먹었고 책을 읽었고 얼마 안 되는 학교 숙제를 길게 붙잡고 있었고 잠들기 한 시간 전에야 수학 문제집을 펼쳤다. 아이가 하교하면 나는 주방 일을 하며 식탁에 앉은 아이를 감시하듯 바라봤다. 간식을 아직도 먹니? 또 먹니? 책은 이따가 보는 게 어떠니? 학교 숙제는 했니? 창밖으로 해가 지면 더욱 불안해졌다. 수학 문제집은 언제 풀고 자려고, 어? 아이의 대답은 언제나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러면 나도 더 진한 짜증으로 말했다. 그렇게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날 선 짜증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할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 앞에 놓인 수학 문제집을 치웠다. 내 모습에 불안함을 느꼈는지 아이가 문제집을 다시 챙겨 들었다. 문제집을 풀 거라고 말했지만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하자, 아이는 금세 그 의지를 꺾었다. 내 눈치를 보며 진짜 안 해도 되냐고 되묻는 아이에게 말했다.
- 응,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아.
그랬다. 우리는 정말 많이 싸웠다. 우리로 인해 큰 아이는 방 안에 들어가는 일이 많아졌다. 신랑도 나와 작은 아이 사이에서 중재를 하다 지쳐갔다. 사실 수학 문제집을 치운 건 홧김이었다. 그런데 수학 문제집을 치우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스트라이크를 하려면 힘으로 볼링공을 던져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힘이 들어간 손은 볼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고 손에는 상처를 남겼다. 볼링을 잘한다는 건, 자세를 잘 유지하면서 몸에는 힘을 빼는 데 있었다. 볼링공이 가진 무게와 내 몸의 움직임이 만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반동을 이용하면 되는 거였다. 볼링공을 쥔 팔에 힘을 빼고 던지는 순간, 사실 나는 불안했다. 이 공이 잘 굴러갈까. 공은 보란 듯이 잘 굴러가 열 개의 핀을 쓰러뜨렸다.
하교한 아이가 설거지하는 내 곁으로 와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방 안에만 있던 큰 아이도 거실에 함께 있다. 아이를 쫓던 시선도, 시간에 쫓기던 불안함도 사라졌다. 아이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앉혀놓으려던 억지스러운 힘이 빠졌다. 불안함도 사라졌다. 창밖으로 해가 지는 풍경의 아름다움을 이제야 알아차린다.
레인 위를 잘 굴러가던 볼링공과 힘을 뺐던 내 움직임을 계속 생각한다. 강사님의 말씀도.
- 억지로 힘을 쓰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