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22.01.25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라는 말이 들어오기 시작한 건 여러 질환들로 건강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렇게 시작된 음식에 대한 관심은 음식재료가 되는 농산물로 이어졌다. 그리고 조리법, 양념, 채식, 땅, 농사, 자연, 환경으로 자연스럽스럽게 관심을 이어갔고 그 무렵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적 세계관을 경험하고 나서는 이 모든 것이 각자도생 하는 개별의 것들이 아니었다. 내가 숨 쉬고 먹고 살아가는 자체가 이미 이것들의 영향을 받고 내가 영향을 주고, 다시 내가 영향을 받는 순환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밥상을 생각하는 것은 나를 위하면서 동시에 환경을 위하는 아주 중요한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의 일상이기 때문에 습관과도 같다 생각하니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오이 2개 천 원, 5개 이천 원이면 5개를 사고 2-3개는 썩혀버렸다. 이렇게 버리는 한이 있어도 2개를 천 원에 사는 건 손해라고 여겼다. 엄마가 계절마다 농사지어 담가주시는 계절김치가 먹기 버거웠다. 다음 계절김치가 올 때까지 먹지 못한 시어버린 김치는 어떻게 먹을 궁리보다 일단 버렸다. 또 보내주신 감자는 싹을 틔워 도저히 먹을 수 없게 짜글짜글해지면 처치곤란이라고 투덜대며 버렸다. 부모님의 노고도, 주신 음식에 대한 감사도 잊은 채 입맛에 맞으면 좋아하고, 안 맞으면 방치한 채 음식쓰레기가 되는 운명을 맞이하곤 했다. 양배추 심지는 당연히 버리는 것이었다. 샐러리 이파리도 당연히 못 먹는 것이었다. 김치를 다 먹고 남은 김치 국물은 역시나 활용도가 없었고 하수구에 흘려버렸다. 이렇게 나온 음식쓰레기들을 버릴 땐 그저 냄새나고 더러웠다. 내가 만들었다는 의심은 털끝만큼도 생겨나질 않았고 어딘가에 해를 끼친다는 돌아봄은 개념조차 없었다.
변해야겠구나 자각하기 시작한 10년 전부터 조금씩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식탁 위를 바꿔나갈 수 있었다. 우선 음식을 남김없이 먹기 시작했다. 집에서 먹고 남은 음식은 다음 끼니에 내가 다시 먹으면 되었고, 남기지 않도록 덜어먹는 데 유의했으며, 무엇보다 남겨 버리는 음식에 대한 반성의 자세를 갖게 되었다. 돈을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필요한 만큼만 장을 봤다. 썩어 나가는 일이 없도록 적당히 소비하고 성실히 먹었다. 양배추 심지는 영양가도 많다는 걸 알았으니 국에 넣어 먹고, 쪄서도 먹었다. 양배추 한 통에 버릴 것은 없었다. 샐러러잎은 장아찌를 담아 김밥 속에 넣어 먹으니 별미였다. 김치 국물은 궁리하여 최대한 이용했다. 부침개를 만들고 김치말이 국수를 하거나 도토리묵사발을 해 먹으면 이만한 게 없다.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감자는 적당히 덜어 냉장고에 넣어 오래 보관하고 나머지는 제철에 열심히 먹었다. 늘 농사지은 산물들을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보내고 싶으신 부모님의 마음을 이제는 안다. 지금은 늘 감사하게 받는다. 그리고 맛있다는 표현을 부모님께 아끼지 않는다. 진심으로 그렇다. 버려지는 것 없이 먹기 위해 양이 넘칠 때는 부지런히 전처리를 해서 보관하면 오래 먹으니 좋다.
버리는 행동은 땅에도 물에도 이롭지 않았고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으며 무엇보다 버리는 나에게 이롭지 않았다. 같은 에너지라면 버리기보다 덜 버리는데 들이는 그것은 모두에게 긍정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10년 전에 비한다면 나는 많은 변화가 있지만 늘 더 무해하지 못한 스스로를 돌아볼 때가 많다. 변화된 태도는 가랑비에 젖듯 천천히 일상이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하나에 더 관심갖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나는 버리는 일상을 살고 있으니까. 돌아봄이 스스로에 대한 탓이 되어 변화에 뒷걸음 하기보다 조금 더 앞으로 변화하는데 힘이 되도록 스스로의 내면도 잘 살펴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남은 평생 그렇게 조금씩 변화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