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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Oct 29. 2023

인디언감자와 수세미


23년 가을



바로 옆 텃밭에는 인디언감자가 자란다. 위치가 나의 수세미밭과 나란이다. 수세미를 밭 제일 끝에 심은 이유는 넝쿨이 감당이 안되기에 다른 밭에 해가림 등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인데, 옆 텃밭주인도 그런 모양이다. 이름만 감자지 굉장히 못 보던 풍경으로 자란다. 위로 타고 자라는 숯이 말도 못 한다. 수세미도 인디언감자도 붙어있으니 서로를 의지해 자꾸 넝쿨을 제자리에서만 뻗지 않고 엉기는 탓에 네 자리 내 자리를 상실한지 오래다. 처음엔 분리해 주다가 여름날 어느 순간부터 나도 마음 편하게 두었다. 사람손으로 할 일이 아니었다. 인디언감자 주인아주머니도 만나서 얘기를 나누니 같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내버려 두기로 인간 둘도 마음을 맞췄다.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옆 텃밭 아주머니를 만나 인디언감자밭이 신기하네, 어떤 맛인가 궁금하네,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세미가 감자밭사이 깊숙한 곳에 걸려있는 걸 찾았다. "어머 여기 수세미 있네요" 하시길래 "감자밭에 있는 수세미는 쓰세요"했다. 다행히 수세미를 수세미로 사용하고 계셨다. 아마 잎이 무성한 인디언감자밭을 헤치면 수세미가 더 있을 거다. 밭을 넘어가 자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 처음엔 '내 거'하는 마음이 자리했다. 남 주느니 잘라버릴까 하는 이상한 독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 곧 이런 요상스러운 마음이 나를 얼마나 갉아먹는지, 나눠먹고 채워지는 충만함이 얼마나 이로운지 떠올리며 감자들 사이에도 자라고 있는 수세미의 능글맞음을 귀여워했더랬다. 아주머니가 수세미를 쓰고 계신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씨를 받아 내년에 심어보신다고 하니 이 또한 반갑고. 2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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