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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Jun 10. 2024

고수숲


24년 초여름



작년 막 본격농사가 시작되던 봄쯤, 누군가의 텃밭을 지나가다 바람 곁에 내 코를 후비고만 고수는 어느 때와 정반대로 입맛을 돌게 하는 바람에 나는 그렇게 앞뒤 없이 고수덕후가 되고야 말았다. 분명 나는 쌀국수는 좋아해도 고수극혐주의자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작년 고수모종을 심어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오줌 지리듯 한줄기한줄기 수확해 모아두었다가 한번에 양껏 맛을 보았는데, 그보다 더한 아쉬움은 수확하는 재미가 없었다는 것. 시장에 뿌리째 퉁퉁하고 진하고 튼실한 고수다발을 볼 때마다 어떻게 저런 고수를 기를 수 있는지, 기르고 싶어서 벅찼다. 그래서 올해는 고수 씨를 뿌렸다. 시금치 잎채소 등등 씨앗파종으로 실패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그래서 아직 모종 아닌 씨앗파종에 대한 자신이 부족한 나는 고수 씨를 뿌려놓고도 반신반의. 시일이 지나고 빼꼼한 떡잎을 보고도 반신반의. 또 시일이 지나 삐죽빼죽 뻗은 연초록의 짧다구리한 고수잎들을 보고도 심드렁. 시장에서 본 고수다발만큼은 자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텃밭은 장관이다. 주말비를 맞고 며칠 못 본 사이 고수가 (내 눈에는) 숲을 이뤘다. 쭉쭉 높이 진한 초록을 엎고 풍성한 고수숲. 다 큰 고수잎을 해치면 또 뻗어 올라오고 있는 고수잎들. 이로써 올여름은 원 없이 고수를 길러 먹을 수 있다. 잎을 끊을 때마다 풍기는 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인센스다. 그럼 앉은자리에서 먹어보지 않을 수 없다. 방송인 전현무 씨가 소여물먹듯 고수를 먹어치우는 모습을 나는 이제 가슴깊이 이해한다. 고수 이퀄 행복이라는 공식은 분명하다. 작년 봄, 나에게 불어온 그 전향적인 고수향기는 누구에게 고마워해야 할까. 바람? 고수밭주인? 그 순간 그곳을 지나가던 나? 누구든 무엇이 됐든 관련된 모두에게 땡큐.  2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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