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늘 한 번뿐

/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by 밀품

22.02.18


빈 봉지에 집게를 넣고 돌돌 말아 뒷짐을 진 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참 산을 관리를 잘했어, 쓰레기가 없네 없어' 초입부터 쓰레기 없는 산으로 규정짓자 뒷짐이 절로 되었다. 오르기도 힘들어 7할은 바닥만 보며 오르는데, 허리를 더 굽혔다 펼 여력을 짜내기가 싫기도 했다. 그렇게 일체가 된 봉지와 집게를 펼쳐들 일이 없을 것처럼 산을 올랐다.




본격적으로 숨 가빠지는 계단 구간이 시작됐다. 내가 그렇듯 사람들은 펜스를 잡고 토할 자세를 취하거나 계단에 앉아 머리를 다리사이에 박거나 물을 마시거나, 하여간 여기부터는 정상까지는 간간이 멈춰줘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멈춰서 먹는 것으로 체력을 충전하는 듯싶다. 왜냐면 당 충전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해서다. 사탕이 당 충전에 제일인 것 같고 초코바, 과일즙 포장지가 많이 보였다. 생수에 든 물도 당연히 마셔야 할 테고 나처럼 비염이 있다면 손수건이 흠뻑 졌도록 코도 풀어야 할 테니 휴지도 필요할 테고 한 겨울에는 핫팩도 좋은 체온조절 아이템이다. 숨이 차 마스크는 벗어 버렸을까, 박카스 한 병에 기대 피로를 몰아내고 파워를 내보았을까.




뒷짐을 풀고 집게를 꺼내 알사탕 봉지를 주웠다. 그래도 봉지는 여전히 가벼워 팔랑 데며 다리에 닿는 게 신경 쓰여 다시 집게를 넣고 돌돌 말아 들었다. 그러다 초보 바, 과일즙 포장지를 줍기 시작했고, 박카스 병가 핫팩을 줍고 나니 봉지가 묵직해지기 시작했다. 등산로가 계단이다 보니 계단 사이 등산로에 빠져있는 쓰레기는 잘도 보였다. 그냥 지나칠까 싶다가, 허리를 깊이 숙이고 집게가 닿는 만큼 손을 뻗어 휴지를 꺼내봤다. 다행히 잘 잡혀 올라와 봉지에 골인을 하니 이 또한 기분이 괜찮다. 다음에는 펜스 밖으로 허리를 굽혀봤다. 조금 큰 쓰레기들도 건져 올렸다. 주울 쓰레기가 별로 없다 싶던 것과 다르게 정상에 닿을수록 봉지는 무게를 쌓아갔다. 그 무게만큼 나는 허리를 자주 굽혔고, 인형 뽑기라도 하듯이 주워 올리려고 시간을 보냈다. 흥을 돋워주어 산을 오를 때 듣는 싸이 음악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들었는지도 모르고 꽤나 쓰레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정상에 도착쯤에는 뒤따라오던 아저씨 한분이 말을 거셨다. ‘아구 좋은 일 하네’ ‘아니요…’ 그렇게 나를 앞지르시더니 쓰레기를 하나 주워 드시는 게 아닌가. 반사적으로 ‘여기 주세요' 하며 봉지를 내밀었다. ‘저도 오늘이 처음이에요’라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뭐가 중요한가. 사계절이 얼마나 반복돼야 이 산에서 썩어 없어질지 모르는 눈앞의 쓰레기를 나와 아저씨는 줍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했다. 어려워서 건 힘들어서 건 단지 귀찮아서 건 하지 않던 것을 처음 시작할 때는 마음도 스킬도 풀 충전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안 하고 못 배기는 건 처음을 지나 습관이 되면 자연스레 되는 것이니까. 처음으로 허리를 깊이 숙여 집게에 닿을까 말까 하는 쓰레기를 집어 올리고 난 후 두 번째부터는 허리가 절로 숙여졌다. 세 번째부터는 그냥 쪼그려 앉아 주었다. 다음 산행부터는 깜빡해서 집게를 두고 와서는 되돌아가는 헛걸음은 없을 것이다. 처음은 늘 그렇게 한번뿐이다. 그 한 번을 기꺼이 해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