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울 것들

/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by 밀품



22.02.14


신발장에 안에 넣어둔 집게에게 다시 제 쓰임새를 줘야겠다. 동네를 잘 걸어 다니는데 목적은 운동이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와서는 걷는 김에 쓰레기도 줍자며 집게와 봉지를 들고나갔다. 한 골목을 지나기도 전에 담배꽁초로 봉지가 가득 찰 판이니 무심히 다니던 골목 쓰레기에 현타가 왔다. 그런데다 백 미터도 안 되는 한 골목을 다 지나지도 못하고 운동시간이 끝나버리니 운동이 안 되는 건 당연했다. 두 가지 목적은 동시에 충족하기 어렵겠구나, 싶자 집게는 스르르 신발장안으로 자리를 옮기고는 나오지 못했다.




이후 작년 가을부터 집 근처 산으로 운동코스를 바꾸었다. 최소한 일주일에 두 번은 오르내리는데, 초기에 터질듯한 심장과 오르막에 적응하는 몇 달 동안은 산이 깨끗했다. 아니, 그래 보였다. 그렇게 올해 겨울이 지나는 동안 심장은 산에 적응했고, 눈은 발밑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겨울이라 핫팩, 마스크, 물티슈같이 비교적 큼직한 쓰레기들이 낙엽 사이를 뒹굴었다. 비교적 관리가 잘 되는 산이라 이 정도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때부터는 나에게 운동할 공간을 내어주기만 하는 산에게 나도 이로운 무어라도 해야지 싶어 쓰레기를 주우며 오르자 마음만 먹었다. 그렇게 한 두어 달 산 초입에서 반복하는 게 있다.

‘쓰레기 담을 집게랑 봉지를 안 가져왔네' 하며 손을 터는 거다. 밑 마음에는 꼭 치우겠다는 의지도 손에 들리는 만큼 줍기라도 하겠다는 성의도 사실 없었다. 다음에… 하는 그런 마음. 무슨 쓰레기를 장비 빨로 줍는 단 말인가. 결연한 의지까지야 필요하겠나. 조금 덜 편리할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일 텐데.




오늘은 퇴비함에 넣어줄 낙엽이 필요해 주워야 한다. 그러면서 쓰레기도 주워야겠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에 따라 나타나는 나의 적극성과 행동력의 차이를 뭐라 하겠나. 그런데 사실 근본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주는 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숨 쉬고 물 마시는 것만큼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없을 텐데, 하면서 오늘은 신발장의 집게를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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