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22.03.11
재작년 늦가을인가 싶다. 구리로 한의원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광나루역에서 지하철을 환승하는데 지하철 입구 과일가게에 진열된 대봉 홍시가 눈에 밟혔다. 집 근처 시장과 마트에도 홍시가 흔한 계절이었지만 집에서 2시간 거리의 광나루역 앞의 홍시가 눈에 밟힌 건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서였다. 약하디 약한 대봉 홍시를 다치지 않게 진열하고 판매하는 건 과일가게 사장님들의 미션과도 같았겠지. 어딜 가도 플라스틱과 랩 포장이 기본이었다. '에이, 그냥 먹어!' 싶다가도 한 순간 입에 좋자고 나보다 오래 살 플라스틱을 들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마음을 딱 먹고 남은 평생 홍시를 사지 않는데도 내 인생에 점 하나 남기지 않을 만큼 별일은 아니었다.
그런 포장 없는 대봉 홍시를 광나루역 과일가게에서 본 것이다. 그러니 이 때다 싶을 수밖에. 얼른 가서 장바구니를 내밀고 대봉 홍시를 담았다. 바닥에 각이 잡히지 않는 장바구니에 아기 엉덩이 같은 대봉 홍시 4개를 담고 보니 서로 부딪혀 언제 터질지 모르겠다. 게다가 퇴근시간과 겹쳐 지하철은 이미 만원이었고, 홍시를 다치지 않게 장바구니를 집까지 사수하는 미션이 주어져버렸다.
장바구니 입구를 최대한 오므려 서로 닿는 횟수를 줄이고 지하철에서는 최대한 팔을 낮춰 사람들 종아리 사이로 장바구니의 공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그렇게 만원 지하철을 2시간 타고 집에 왔다. 1개의 홍시만이 약간의 상흔을 입고 홍시 살을 흘렸을 뿐 나머지 3개는 이상무였다. 팔과 어깨의 긴장과 장바구니 속을 살필 수 없는 상황에서의 불안과 궁금함으로 누적된 2시간이 한순간에 다행으로 녹아났다.
이렇게까지 대봉 홍시를 먹을 일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잘 사수해서 일회용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가을을 맛볼 수 있어 뿌듯하고 대견한 마음이 더 컸다. 작년 가을도 홍시를 대하는 나의 자세는 비슷했다. 덜 수고스러웠던 것은 인근에서 직접 수확한 대봉 홍시를 집 앞 시장에서 포장 없이 판매하시던 아버님 덕에 늦가을 대봉 홍시를 원 없이 먹었다. 뭐 그렇게 상황이 주어지는 대로 나의 가을 홍시는 매년 가까웠다 멀었다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