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22.03.18
어느 책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옛적부터 우리는 그 계절에 나고 자라는 것에 기대어 먹고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계절마다 나고자라는 것이 따로 있고 수확의 많고 적음도 차이가 있으니 저장과 보관에도 그 방법들을 조상들은 고안해내어 살아왔다. 그것이 말리고 발효하고 묻고 하는 방법들일 게다. 지금처럼 먹는 것이 넘치고, 채소들이 계절을 넘나드는 때와는 다른 시대이기는 하나 태초에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땅을 일구어 무언가를 길러 내기 시작한 때는 분명 지금보다는 자연에 기대어 살았을 것임은 지금의 나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감자가 나니 감자를 먹고, 옥수수가 철이니 옥수수를 먹고, 나는 것이 없는 한 겨울에 대비해 미리 삶고 말리고 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삶을 이어온 것이다. 글로 적자니 새삼스럽지도 않은 이야기다. 그런데 그 책에서 구절을 읽었던 그때 나는 뭐가 그렇게 새삼스러웠을까.
그때는 한창 텃밭을 가꿔 밥상을 채워가는데 재미를 알기 시작한 때였다. 늦가을 처음으로 땅콩을 수확하면서 느꼈던 가을걷이와 밭갈무리가 주는 환희는 어마어마했다. 열 평 텃밭을 조물락거리면서도 내 깜냥에는 그래도 농사라고 길러내는 것과 먹고사는 사이의 관계에 눈과 마음이 열리는 때였다. 이건 책으로도 어떤 명강의로도 찾을 수 없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냥 몸으로 부딪히고 직관하면서 찾을 수 있는 그런 거였다.
어제의 냉장고 안을 보고는 다시 그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흥들이 피어났다. 냉장고 안에는 무언가 먹을 것이 잔뜩 있었다. 그냥 꺼내면 반찬이 되는 장아찌도 2가지, 김치도 2가지, 된장 고추장도 있으니 내키는 대로 찌개를 끓일 수 도 있고, 샐러드를 먹을 수 있는 채소도 있었다. 사실 너무 많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먹을거리를 떠올렸다. 시장에는 매주마다 한 자리씩 자리를 늘려 생긋한 봄나물들이 나를 유혹했다.
'취나물은 이렇게, 미나리는 저렇게, 방풍은 또 저렇게 먹으면 맛있겠지!'
먹을 것을 두고도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먹을 것이 많아서 이렇구나 싶었다. 가져도 끝없이 갖고 싶고 채우고 싶은 것처럼 먹어도 또 새로운 걸 먹고 싶은 건 다른 마음일까. 사시사철 언제나 원하는 먹거리가 차고 넘치는 지금은, 뭘 넘치게 먹었나 보다 뭘 더 먹지 못했나 헤맨다. 그래서 채우려면 버리는 것이 당연해진다.
한 번씩 상기한다. 채우고 싶은 습관은 강하다. 오랫동안 삶의 이유가 그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비우려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건 단순히 습관의 변화를 위함은 아니다. 삶의 지향이 바뀌었으니 습관을, 물살을 거슬러야 한다. 영차영차. 노력과 성의가 주는 작은 변화들을 즐긴다. 완성이란 게 있을까 싶지만 그것은 그냥 저 멀리 두자. 오늘 뚜벅뚜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