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22.10.16
의외로 양말은 구멍이 잘 납니다. 꿰매신기 시작하면서 그렇다는 걸 부쩍 체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같이 신발 바닥과 발바닥의 마찰을 견디고 있으니 쓸림이 대단할 것입니다. 양말 구멍을 보면 신는 사람의 걸음과 직결된 무언가가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저는 주로 두 번째 발가락 구멍이 잘납니다. 아주 길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주로 뒤꿈치 그리고 발바닥에 구멍이 납니다. 발바닥은 어째서 구멍이 날까.
여하튼 양말은 의복 생활 중에서도 매일 챙겨 신고 없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참 별거 아닌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구멍이 나면 버리고, 한 짝을 잃어버리면 버리고, 목이 조금만 늘어나도 버리고 그냥 신다 마음에 안 들면 쉽게 버렸습니다. 어릴 때 양말공장을 운영하셨던 아빠 덕에 90년대에 망하고만 양말공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그때의 양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새양말이라 신기는 신어야겠고 필요한 누군가와 나눠 신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신자니 옷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거나 그 자체가 나의 취향이 아니었던지라 참 난감했습니다. 그저 한 해 한 해 큰 박스에서 작은 박스로 옮겨 담으며 줄어가는 양말을 새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양말은 어서 구멍 나길 바라는, 어쩌지 못해 신는 천덕꾸러기였다고나 할까.
지금은 우리 집 양말의 위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짝을 잃어버리거나 짝이 운명을 다하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신을 만한 남은 한 짝의 쓰임을 고민합니다. 주로 빨래를 개면서 구멍을 발견하는데, 빨래를 모두 개 놓고는 실 바늘을 꺼내 바로 꿰매 줍니다. 그냥 두었다가는 귀찮음에 한 동안 무시당할게 뻔하니까요.
며칠 전에는 남편이 양말을 벗더니 구멍 난 걸 보여주고는 쓰레기통에 넣습니다. 남편이 꿰매 신는 양말을 두팔벌려 반기지 않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하지 말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꿰매 놓으면 알아채지 못하고 신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버려진 쓰레기통에서 꺼내 빨래통으로 옮겨두었습니다. 세탁 후 꿰맬예정인데 경험상 재구멍으로 두 번의 바느질까지는 불편 없이 양말을 신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연장된 양말의 수명은 생각보다 깁니다.
얼마 전에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라는 제목의 국내 다큐를 봤습니다. 실감했습니다, 내가 쓰레기통에 버린 어떤 것도 단지 내 눈앞에 보이지 않을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게다가 내 눈앞이 깨끗한 대가로 어느 나라에는 그 쓰레기가 산처럼 쌓이는 것을 견뎌야 하고, 어느 사람들은 오염과 쓰레기를 대신 짊어지고 생계마저 위협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의류수거함에 넣은 나의 옷이 누군가에게는 입어줄거라는 생각, 착각이었습니다. 지금 내 옷장의 양말을 평생 신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최선은 이런 데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해 오래 신고, 그 쓰임이 다하면 다른 쓰임을 찾아 최대한 늦게 쓰레기통으로 보내야겠습니다. 물론 양말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