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깃밥이 남았습니다

/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by 밀품

22.07.11


얼마 전 지난 직장 동료가 찾아와서 점심 외식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직접 만드는 손두부로 끓여내는 버섯전골, 흔하디 흔한 메뉴 설명이지만 봐도 봐도 먹음직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처음 가보는 이곳을 동료와 갔습니다. 나의 손가방에는 작은 빈 통도 지참했습니다. 분명 나의 공깃밥이 남을 예정이니까 말입니다. 이열치열 뜨거운 버섯전골에는 갖은 버섯이 듬뿍 들어있고 먹음직스러워 동료도 나도 열심히 연신 전골을 퍼 날랐습니다. 내가 남긴 반공기까지 먹어준 동료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전골은 남고야 말았습니다. 많이도 아닙니다. 주먹 하나 들어갈 만한 빈 통에 맞춤이라도 한 듯 딱 그만큼. 버섯이 가득한 남은 두부전골을 작은 통에 담았습니다. 동료도 나도 그랬습니다. 저녁 한 끼 먹기에 딱이네. 그렇게 전골팬은 남김없이 비우고 나의 저녁밥상까지 채우는 만족스러운 점심이었습니다.




하루는 30분 요가를 다하지 못하고 지쳐버린 그런 날이었습니다. 점심을 챙겨 먹기에 입맛도 성의도 없던 그런 날이었는데, 잠시 외출한 길에 전라도 백반이라는 메뉴판에 홀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받게 된 8첩 밑반찬의 밥상은 가짓수만큼이나 양도 많았고 꾹꾹 눌러 담은 공깃밥 인심 또한 후했습니다. 다 먹지 못할 반찬은 반납하고, 반찬 그릇은 싹 비웠지만 보기에도 배부른 공깃밥은 반절을 남기고야 말았습니다. 계획에 없던 외식 탓에 남은 음식을 담아올 빈 통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그럴걸 예상했지만 나는 스르르르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고야 말았던 겁니다. 지쳐버린 육신과 백반이라는 유혹에 그만.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지만 최선을 다해 저런 날은 만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그냥 눈 딱 감는 날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식당 앞에 터질 듯 버려지는 음식쓰레기봉투를 보면 미안해집니다. 지구에, 나의 우리의 미래에. 눈 딱 감는 선택의 순간에는 눈을 떠야겠습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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