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22.05.23
집안에 수명이 다한 것들이 생겨났다. 이미 수개월 전에 수명을 다한 남편의 모니터가 폐기의 순간을 가장 오래 기다리고 있었고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장 난 부루스타가 그다음이었고, ㄱ 과 ㅐ였나 ㅔ였나 정확하지 않지만 키판을 몇 개 상실한 나의 키보드가 있었고, 마지막으로 물이 세는 신호를 보고도 한동안 묵살한 전기포트가 있었다. 십 년쯤 사용한 전기포트는 물이 세고도 한동안 사용을 했다. 더는 안 되는 것을 누전차단기가 다운되는 걸 보고서야 알았다. 이제 두고 볼 수가 없다. 폐기해야 한다.
모니터를 처리하지 못한 대는 이유가 있었다. 폐기 스티커를 사러 가니 모니터가 항목에 없는 것이다. 그냥 분리수거함 앞에 두란다. 엥? 그렇게 두면 진짜 공식적으로 수거가 됐을지, 혹은 그런 폐기 가전만 찾아다니는 어느 사람의 눈에 우연히 들어 실려 갔을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표시 없이 무턱대고 내놓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수거업체들을 찾아 전화를 하고 불통이 되고, 작은 모니터 한대를 가지러 오려나 싶은 짐작을 하고, 더 이상의 신경 씀이 귀찮았고, 소용을 다했음에도 버리는 것에 대한 뭔가 은근한 불편함이 범벅이 되어 한쪽에 치워두고 만 것이다. 부루스타는 구입하고는 몇 번 사용하지 않고 고장이 났다. 외관은 너무 새것 같고 부루스타는 폐기를 안 해봐서 막연한 막막함과 위와 같은 불편함의 범벅이 또 버리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전기포트가 차단기를 떨구는 방법으로 더 이상의 쓰임을 거부했을 때 이제 속시원히 모두 폐기를 하기로 했다. 늘 걸어 다니는 골목 끝에 고물상이 있다. 그 생각을 왜 못했는지. 하루는 마음먹고 들러 여쭤보니 폐기 가전을 받는다는 게 아닌가. 묵은 때 벗기는 마음으로 당장 집으로 가 이 모두를 챙겨 들고 고물상에 도착했다. 고물상 사장님은 흔쾌히 물건들을 받아주셨고 이 말을 남기셨다.
'왜 부르스타는 고쳐 쓰시지'
'고칠 수가 없더라고요'
고쳐 쓰지 않은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유는 궁색했다. 고쳐쓸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내가 그 순간 이렇게라도 사장님에게만큼은 최소한 고쳐쓸 생각은 했다는 어필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다. 아니었던 것 같다. 사장님의 말에 태풍의 눈에 빨려 들 듯 부끄러움이 순식간에 엄습하는데 그냥 대답이라는 게 필요해서 아무 말이나 한 것 같다. 고쳐쓸 생각을 왜 하지 않았지? 결과적으로 고치지 못했을지라도 새것 같은 부루스타를 한 번쯤 고쳐서 쓸 생각을 왜 못했지? 그냥 그런 내가 난감했다. 만 원짜리 두세 장이면 사는 것에 수리의 필요는 애초에 없었던 거다. 그게 정확했다. 작년에는 고장 난 김치냉장고를 수리를 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다. 수리를 해서 다시 사용해보자는 물건카테고리에 부르스타는 없었던 거다. 필요하면 큰 비용을 치르지 않고 쉽게 또 살 수 있으니까. 오래 쓰는 게 지루한 세상이지만 한편 그렇기 때문에 물건의 수명은 쓰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천차만별이기도 하다.
새것에 대한 흥분된 마음보다 시간과 익숙함을 쌓아 사용해온 편안함을 조금만 더 오래 유지하는 것에 마음을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