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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Mar 29. 2022

제주 봄의 시작은 벚꽃으로

-전농로 벚꽃길을 걸으며-

 제주에 온 지 일 년도 안 된 동료 선생님이 묻는다. 

"선생님, 왜 이렇게 추워요? 봄인데"

아닌 게 아니라 3월 말이 되고, 4월이 코앞인데도 제주는 춥다. 지난주까지는 계속 비가 내려 날씨가 쌀쌀했고, 이번에 따뜻한 햇볕과 동시에 싸한 바람이 분다. 물론 겨울의 그것과는 조금 누그러진듯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몸으로 느끼는 온도는 차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 더운 듯 따뜻한 듯하지만 집으로 들어서면 추워서 몸을 떠는 기이한 현상이 제주에선 종종 일어난다. 그래서 

"집이 더 추워요" 한다. 

 수업 때문에 오늘 아침 전농로를 갔다. 차 밖 도로로 하얀 벚꽃 세상이 양옆으로 즐비하게 서었다. 어서 오시라 환영을 하듯. 지금부터 봄의 향연이 시작되겠습니다. 어서 봄을 느껴보세요. 재촉하는듯하다. 그 덕분에 카메라를 든 사람들로 모처럼 거리가 활기에 젖는다. 그동안 문이 굳게 닫혀 있던 카페, 옷가게, 쿠키 가게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고, 여인들은 두 손을 꼭 잡고 나무 옆에 가서 포즈를 잡는다. 어제까지도 이런 풍경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오늘 수업 하러 가는 길에 눈호강이다. 

전농로 벚꽃길

제주는 꽃으로 봄이 온다. 드라마 도깨비는 비로 오고 눈으로 온다지만 제주는 동백꽃이 피고, 개나리가 얼굴을 내밀고 노란 유책 꽃으로 하얀 벚꽃으로 온다. 그렇게 봄이 지나갈수록 온 섬이 꽃 천지로 다시 태어난다. 벚꽃 하면 일본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엄연히 왕벚꽃 자생지는 제주도다. 프랑스인 선교사 에밀 타케가 제주도가 왕벚꽃 자생지임을 전 세계에 알렸고 제주는 온 섬이 흐드러진 벚꽃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 벚꽃이 꽃들의 도미노처럼 전농로를 시작으로 광령초등학교 앞길, 제주대학교 진입로로 가시리 녹산로까지 서서히 번져가며 온 섬을 꽃 릴레이 경주를 한다. 벚꽃에게 질세라 유채꽃도 샛노란 빛에 존재감을 실어 온몸을 곧추 세운다. 바람에 흔들리는 유책꽃과 바람에 꽃 눈을 휘날리게 하는 벚꽃들이 서로 경쟁을 하듯 유난을 떠는 곳. 그곳이 바로 제주도다. 

 그래서 주말이면 꽃구경 인파가 넘쳐난다. 작년이었던가. 코로나 여파로 몰려드는 관광객을 감당 못하고 유채꽃을 갈아엎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빼앗긴 들이지만 여전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듯 코로나로 어지로운 세상이지만 어김없이 꽃들의 시계는 봄에 맞춰져 있다. 매년 이맘때 쯤이면 벚꽃축제가 열렸었다. 흥겨운 음악과 맛있는 음식, 지역 특산물이 소개되고, 어린이들의 그림 그리기 대회 등 갖가지 행사가 넘쳐나곤 했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곳에서 친구를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며 갑자기 추워진 밤인데도 집에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제주의 축제는 꽃과 음악과 사람이 함께 했다. 각 달별로 축제만 쫓아다녀도 될 만큼 행사도 많고, 잔치도 많고, 축제도 많았다. 그랬던 것이 이젠 아득하게 느껴진다. 

오래간만에 걷게 된 전농로에는 올해도 벚꽃축제는 취소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많이 아쉬웠다. 언제쯤 바글바글 사람들과 어울려 온 몸 들썩이며 축제를 즐길 수 있을까? 이제 다 왔다 생각하면 저만치 멀어지고 이제 다 됐다 싶으면 다시 도망가는 오미크론과의 사투는 정말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 우리의 맘이 이런데도 시간은 가나보다. 그래도 꽃은 나무는 제 시간을 지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  


 제주의 봄은 벚꽃으로 온다. 전농로에서 시작된 벚꽃이 아라동을 타고 올라가 제주대학교까지 올라가서 절정을 이루고 다시 질 때면 제주는 서서히 여름 맞을 준비를 할 것이다. 바람 불고, 뜨겁고, 축축한 여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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