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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Jul 13. 2020

'카톡'에 대한 단상

-편리한 '카톡', 얄궂은 '카톡', 가면을 쓴 '카톡'-

처음 '카카오톡'이 나왔을 땐 정말 편했다. 언제 왔는지 확인되지 않는 문자보다 '카톡' 소리에 즉각 즉각 대답이 가능하고 얼굴을 보지 않고도 끊임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실시간 랜선 수다방인 데다가 어느 곳에서든 어느 시간이든 연락의 자유로움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영역이 더욱더 넓어져 뱅크, 쇼핑몰, 게임 등 다양한 기능들이 더 빠르고 더 편리하게 중무장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카톡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인 일에서부터 직장에 이르기까지 이젠 '카톡'을 빼놓고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휴대폰 안에는 단체톡 방이 열몇 개가 넘고, 메시지가 왔다는 숫자만 봐도 저절로 손가락이 그곳을 향한다.

 이런 카톡의 편리함은 끝도 한도 없이 많지만 난 가끔 카톡이 얄궂게 느껴지거나 족쇄로 느껴지거나 나 스스로 내 얼굴이 아닌 카톡 가면을 쓰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듯하다.


 '카톡'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가지가지다. 첫째, '카톡'을 늦게, 아주 늦~~~~~게 읽는 사람이 있다. '카톡'을 보낸 지 길게는 반나절, 짧게는 한두 시간 늦게 대답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은 항상 정해져 있다. 왜 이렇게 늦게 답하냐며 볼멘소리를 하면 '너~~~무 바빴다고, 너~~~~무 정신없었다'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카톡'은 즉문즉답이 생명일진대, 그래서 다수가 함께 할 때 제일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이것일진대 대답 없는 '너' 때문에 성격 급한 나는 다시 전화기를 들게 된다. 함께 있을 때는 자주 휴대폰도 들여다보는 것 같고 문자도 그때그때 확인하는 것 같은데 내가 카톡으로 연락할 때는 유독 바쁘고 시간 없고, 정신없고, 피곤했다 대답하니 정말 이상하다. 그 '카톡'을 보내는 나만 한가하고, 나만 목 메달고, 나만 할 일 없는 사람이 된다.

 또 '카톡'이나 '밴드'가 일상을 공유하고 소소한 일을 나누고 싶어 올리는 거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사진이나 소식을 전하면 앞에서는 '와~~ 좋았겠네~~, 멋지다~~~~ 축하해~~~'해 놓고는 뒤에선 자랑질한다고 쓴소리 하는 사람. 만나서 수다 떨 때는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어도 상관없지만 '카톡'은 중요한 소식만 전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소식을 올린 사람도 뻘쭘하고 지인들의 리액션을 기대하며 올렸던 그 들뜬 마음은 갑자기 분위기 싸해져서 잘난 척, 자랑질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바쁜 와중에 자꾸만 '카톡 카톡' 울려대는 것이 성가시고 신경 쓰였을 수도 있겠다. 또, 몇 명이 단체 '카톡'을 할 때 제일 먼저 읽어놓고도 다른 사람의 카톡을 분석하고 해석하느라 대답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심지가 곧고 깊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줄까 봐 침묵의 순기능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가타부타 의견을 내주었으면 좋겠는데 나중에 결정이 난 다음에야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다. 이렇게 되고 보면 괜히 감정 상하고 속상해 지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카톡'이나 다른 SNS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있다가 다른 글에 친절 친절한 답글을 달았거나 재미있게 소통하는 걸 보면 또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나랑은 별로인가 보다 생각하다가도 문뜩 문뜩 괘씸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 표현을 하는 게 자존심 상해서 '카톡 가면'을 쓰고 그저 그런 안부를 묻거나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나를 본다. 불쌍하다. 이것만이 아니다. 대답이 끝나면 바로 카톡방을 즉시즉시 나가 버리는 사람. 볼 일이 끝났고, 문제가 해결이 됐으니 그다음은 알 바 아니라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님이 퇴장하셨습니다'를 매정하게 남기는 사람, 톡방에 남은 사람들은 뭔가 아쉽고, 찝찝하고 우리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인가 한 번 자기를 돌아보게 되면서 나가버린 사람의 쿨한 행태에 뭐라 하지도 못하고 속만 끓이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가 참지 못하고 다 끝나지 않았는데 전화로 왜 단톡에서 나갔냐고 굳이 다시 초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단톡은 한 달 후에도 두 달 후에도 별다른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마치 네가 먼저 말을 걸까? 내가 먼저 말을 걸까? 신경전을 벌이는 듯하다. 그래서 단체톡 여러 개에 똑같은 사람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한 단체에 이런저런 이유로 단톡 방이 몇 개씩 산재해 있다.  

 또 가끔은 약속을 잡는 건 아니지만 네가 보면 대답하고, 안 보면 나만 해도 좋다는 카톡 사용자도 있다. 맛난 것을 먹으러 가면서 카톡만 날리는 사람, '뭐해? 시간 있으면 ~~~가자' 늦게 카톡을 확인해서 이제야 확인했다고 못 가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자기를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얘기하면서도 '뭐야?'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사람. 정말 나를 데리고 가고 싶긴 했나? 정말 나랑 함께 하고 싶었나? 정말 같이 하기를 원했다면 전화로 약속을 하고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외에도 대화마다 말줄임표(......)를 사용하는 사람. 그 말을 해석하느라 성격 급한 사람을 속이 터지게 만드는 사람,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다시 생각해 보면 아마 생각이 많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거절해야 함이 미안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카톡'은 오해의 여지를 만들기도 한다.

 


 요즘은 축하도 카톡 하나로 선물을 보낼 수 있고 껄끄러운 맨트나 약속을 거절해야 할 때도 카톡은 정말 자신의 임무를 톡톡히 해낸다. 얼굴을 보지 않으니 미안함도 반감이 되고, 나의 입장을 부드럽게 돌려서 말할 수도 있으니 직접 말할 때보다 더 솔직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내 놓고 과연 제대로 확인하고 있을까? 섭섭하지 않을까 하는 2차 3차의 걱정이 또 뒤따르기도 한다. 처음 '카톡'이 나왔을 땐 없어지는 숫자의 의미를 몰라서 읽어놓고도 안 읽었다고 발뺌을 하다가 망신당했던 적도 있는 것 같다. 또 문자나 톡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감정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읽는 사람의 그때 감정으로 글을 읽다 보니 무미건조한 인사가 괜히 시비 거는 거처럼 느껴지기고 하고 '이거 아니었어?'라고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바람에 낭패를 볼 때도 있다. 이런 많은 장점과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나의 인간관계는 '카톡'을 통해 만들어지고 다시 재생산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나의 카톡 사용법'은 어떤가 뒤돌아 보니, 나도 가관이다. 카톡이 너무 많을 땐 제대로 읽지 않아 나만 몰랐던 경우도 있었고, 성격이 급한 탓에 그때그때 읽고 답하면서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며 혼자 화내고, 단톡 방에서 일이 끝났다 하면 바로바로 나와 버리는 예의 없는 사람이었으며,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문장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혼자 '욱'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문자나 다른 기타 방법으로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얼굴을 보지 않으니 사실은 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문장에 마음을 담고, 그 문장의 마음을 읽는 것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오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컴퓨터 앞에서 카톡만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수 있느니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는 시간도 필요하고, 문장을 잘 못 읽을 수 있으니(나이가 드니 더 그렇다) 화부터 내지 말고, 잊어버릴 수 있으니 서로 서로 다정하게 챙기는 것도 필요하다. '카톡' 하나에도 마음이 읽히고 성격을 알 수 있고 어떤 사람인지를 예상할 수 있는 만큼 자기만의 '올바른 카톡 사용법', '재미있는 카톡 사용법'을 조금은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들은 어떻게 '카톡'을 사용하고 있을까?

 


*특정 회사나 '카톡'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닌 카톡 대화의 방법에 대한 개인적 소견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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