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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Dec 21. 2020


내가 걸어가는 길, 내가 가고픈 길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을 읽고-

 

 길엔 여러 갈래가 있다. 오르고 싶은 길, 올라가야 할 길, 피하고픈 길, 함께 하고 싶은 길, 갈 수 없는 길, 계속 앞만 보고 가야 할 길, 굽이져야 아름다운 길. 누구는 숲 속 길을 걸으며 자연과 동화됨을 즐길 것이고, 누구는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것이고, 누구는 아무도 가지 않은 오지의 길을 정복하는 꿈을 꾼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은 느리게 걷고, 깊이 있게 사유하며 자유를 얻는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시인, 철학자, 정치가들의 일화와 ‘걷기’에서 느끼는 인간의 본성을 수필처럼 느끼는 대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좀 더 많은 자료를 찾아봐야 하는 면도 있어 책장을 넘기기 조금 힘들었지만 조촐한 배낭에 산길 걷기를 좋아하는 나에겐 소설에선 느낄 수 없었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자는 ‘걷기’를 어떤 숙달된 기술도, 규칙도 훈련도 필요 없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행복이라 설명한다. ‘걷기’를 통해 멈춤의 자유, 사회제도에서 벗어난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자유,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린 자의 자유를 느낄 수 있다 말한다. ‘걷기’가 어떤 사회적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고 인간을 해방시킴으로써 어느 한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그 순간에 다달았을 때 현존의 힘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걷기’에는 어떤 목표나 해답이 필요 없다. 

 ‘걷기’에서의 고독과 고립이 니체로 하여금 작품을 쓰게 한 것도 바그너와의 갈등과 사회적인 오해로 병든 니체를 치유한 것 역시 ‘걷기’였다. 그래서 니체에게 ‘걷기’는 활동의 조건임과 동시에 몸의 한 요소였던 것이다. 이처럼 걸으면서 하는 사유는 자유를 주고 다른 책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며 그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오롯이 자기만의 세상인 것이다. 또한 ‘난 그저 걸어 다니는 사람일 뿐’이라는 ‘바람 구두를 신은’ 랭보에게도 ‘걷기’는 문학적 열망을 성취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파리로 향하는 길의 모든 자연이 랭보 시의 소재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때론 ‘걷기’가 분노의 표현 같기도 하고 무가치한 결정의 표현 같기도 하지만 결국 걷는다는 것은 그에게 떠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데이비드 헨리 소로는 자연과 하나 된 삶을 동경하며 월든 호수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그곳에서의 삶을 작품으로 탄생시키기도 했는데 소로에게 ‘걷기’란 자신을 재창조할 가능성을 부여하였고 네르발에게 ‘걷기’는 우울함이었다. 또한 절제와 단조로움과 규칙의 산책을 보여준 칸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걷기’ 즉 산책은 발견과 즐거움의 시간이었다. 자신의 뜻과 의지를 향한 정치적 행보의 ‘걷기’로 많은 군중들에게 감동을 준 간디의 행보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걷기’가 생각하고 구성하고 창조와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루소는 ‘걷기’를 통해 문화와 교육, 예술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자연인인 ‘호모 비아토르’를 발견하겠다는 목표로 원초적 인간을 발견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정말 별다른 이유 없이 ‘걷기’를 사랑했다. 


 이렇듯 ‘걷기’는 ‘안’과 ‘밖’의 경계가 없고 시간을 매분, 매초로 잇고 가득 채우는 대신 그것들이 숨을 내쉬도록 그리고 더욱 심오해지도록 느리게 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걷기’가 고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혼자 걸었다 해서 완전한 고독이 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걷는 동안 서로 대화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걷기’가 육체적인 행동과 사색이 함께 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문명이 파괴되고 잿더미가 되었을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두 다리뿐이기 때문에 생존으로서의 걷기를 강조한다. 즉 인간은 언제나 걷는 존재요, 그 걸음 속에 자신의 세상이 들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길 위에서 숲에서 많은 철학자와 시인, 문학가, 정치가를 만났다. 또한 ‘걷기’를 나타내는 ‘자유’, ‘반복’, ‘단조로움’, ‘침묵’, ‘고독’, ‘에너지’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결국 걷기는 반복적인 몸의 리듬에 정신을 맡겨 자연과 소통하며 자신의 근원을 찾는 행위이며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방법인 것이다. 수많은 사회적 이슈에 나오는 삼보일배나 많은 사람들의 시위 행렬에서처럼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임과 동시에 저항과 자유의 상징이 바로 ‘걷기’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눈 내린 오름을 걸었다. 마스크 안에서 헉헉 대는 숨소리와 미끄러지지 않게 집중하다 보니 세상사도 잠시 잊고, 나무와 바람이 주는 자유를 원 없이 만끽하게 되었다. 차가운 바람과 잘 있었냐 안부도 전하고 눈이 쌓인 나무에 춥지 않냐 어루만지면서 누군가 이미 다녀간 길을 나도 따라 걸었다. 그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잠시잠깐 시인이 되어 보기도 하고, 지금의 모든 것을 잊은 편온하고 조용한 다른 세상으로의 일탈도 느껴 보았다. 

오름 정상에서 내려다 보니~~~

 앞으로의 내 생 앞에 어떤 길이 있을지, 어떤 길을 갈 것인가는 순전히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의 이정표가 돼 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쌓아 올린 가치관일 것이고 그 길을 걸음으로써 맞닥뜨리게 될 다양한 경험들은 내 소중한 자산이 되어줄 것이다. 혹시 그 길이 조금 힘들고 귀찮더라도 피하거나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며 그 길을 함께 걸어갈 길동무로 지금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기꺼이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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