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켈러법 그리고 약자일수록 더욱 필요한 안전교육
여름이 다가오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더운 5월의 어느 날, 대구지하철에서 실시하는 안전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교통안전교육은 청각장애인과 농맹을 대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수어통역사가 함께 참여하였다. 이런 교육을 받는 것이 처음이라서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수어통역사가 함께 하기 때문에 정보전달 면에서 '듣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더욱 좋았다.
어릴 적 헬렌켈러를 통해서 얕게 알고만 있던 농맹의 존재, 이들을 책이나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와 같은 매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만날 기회가 되었다는 것도 꽤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농맹이란?
농인과 맹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써, 시청각장애인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헬렌켈러가 있다.
막연히 농맹이면 모든 사람들이 헬렌켈러처럼 전혀 안 보이고 들리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청각장애도 청력손실 정도에 따라 들리는 사람, 전혀 들리지 않는 사람, 수어를 아는 사람, 수어를 모르는 사람 등 다양하게 나뉘는 것처럼 농맹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똑같은 농맹이지만 너무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 않아서 두 발자국 떨어져서 수어를 해야 보이는 분, 가까이서 천천히 수어를 해야 보이는 분, 수어는 알지만 보이지 않아서 글자를 1cm 정도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분, 헬렌켈러처럼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분 등 다양했다.
그들과 함께 받은 교통안전교육은 정말 흥미로웠다. 누군가 의식불명으로 쓰러졌을 때 해야 하는 심폐소생술의 순서와 자세를 배우고, 지하철 내 화재 같은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를 배움으로써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응급상황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줄일 수 있었다.
이번 교육에 참여한 농인들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시간이 한참 밀리기도 했는데, 그들의 넘치는 궁금증은 궁금한 것이 많지만 늘 물어보고 바로 해소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가 지금은 수어통역사를 통해서 물어보고 즉각 답을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을까 한다.
모든 재난상황은 위험을 가져오지만, 특히 신체의 부자유나 보고 듣지 못하여 상황에 대한 인지가 늦은 경우가 많은 장애인들은 더욱 쉽게 위험에 처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안전교육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응급상황 발생 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교육을 실시한다는 점은 한국 사회가 재난상황에서 약자들도 함께 고려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서로의 장애정도는 다르지만 시각적으로 한계가 있다 보니 혼자 걷기보다는 농인 자원봉사자가 곁에 붙어서 함께 움직일 때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농맹들을 바라보면서, 이분들은 수어를 할 줄 알아서 세상과 소통이 이뤄지지만 정말 수어도 모르는 농맹이라면 어떻게 세상과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각자의 장애정도에 따라 다른 통역방법(그들이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천천히 수어를 하거나, '촉수어'라고 하여 손 아래에 손을 대고 수어를 하는 방법을 하거나)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역사의 부족, 촉수어에 대한 정보의 부족 등의 이유로 인해 제대로 된 통역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참석한 어느 누군가는 배운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헬렌켈러법이 통과되지 않은 현재,
한국의 1만 명에 달하는 33%의 농맹은 어딘가에서 여전히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를 통해서 짧게나마 바라본 농맹의 삶은 '어두움'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만난 농맹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속히 헬렌켈러법이 제정되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수어와 점자를 세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면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한국의 헬렌켈러법이 하루라도 일찍 제정되어서 세상과 연결되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브런치 글쓰기에서 맞춤법 검사를 할 때, 농맹이 오류로 인식되고 있다. 헬렌켈러법이 통과되면 농맹도 오류가 아니라 익숙한 단어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