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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 Jun 21. 2023

수어통역사의 기본

수어를 잘 모르거나 수어를 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수어통역을 할 때, 수어를 잘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외국어통역사들이 통역을 잘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영어를 잘해야 하는 것처럼 수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수어는 '수어 단어'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표정'과 '몸짓'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같은 동작의 수어를 하더라도 표정에 따라 그 의미가 꽤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수어통역은 수어, 표정, 몸짓, 의미전달 이 모든 것이 잘 어우러졌을 때 농인들에게 확실하게 의미전달이 된다.


그러나 요즘 만나는 몇몇 수어통역사들을 보면, 대부분 표정이 아니라 단어전달에만 치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아쉬움이 많다. 이런 통역은 말하면서 수어통역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농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런 식으로 '한국어 듣고 그대로 수어로 전달하기'는 정말 지루하다.


의미전달은 되지만 이 같은 통역은 단순히 "맛있게 드세요.", "오늘 저녁에 만나요."와 같이 일상적인 대화는 괜찮지만 강연 같은 기나긴 설명을 이런 식으로 통역하는 경우에는 정말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저 의미전달만 되면 되는 것이지 무슨 재미를 따지는 것인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당신이 말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국어를 읽을 줄 전혀 모르는 어린아이라고 생각해 보자. 당신에게 로봇이 다가와서 글을 읽어주는데 "어흥떡하나주면안잡아먹지"라고 무미건조하고 기계적으로 글자만 읽어주는 것과, "어~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음률을 섞어서 읽어주는 것 중에 무엇이 더 확실하게 이해가 되겠는가?


"아버지가 방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갔습니다"

띄어쓰기만 달라져도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한국말처럼 어떤 표정을 쓰고 어떤 몸짓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수어의 뜻.


수어를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언어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통역을 해야 제대로 전달이 될지 조금 더 연구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이 수어통역사로서의 기본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공인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봇처럼 단어만 전달하는 통역사가 있는 반면, 자격증이 없음에도 눈앞에서 호랑이가 다가와 나에게 말 거는 것처럼 전달하는 통역사가 있는 것을 보면 수어에는 자격증이 있고 없고의 중요함이 아니라 얼마나 더 농인들에게 전달을 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수어통역사라면, 자격증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당신의 수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늘 되돌아보는 습관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통역을 할 때마다 모르는 단어가 많은 것 같다면 농인들에게 자주 물어보고 책을 찾아보기를, 단어는 잘 알지만 통역하는 나를 바라보는 농인들의 표정이 애매하다면 나의 표정의 몸짓은 어떤지 거울을 보며 연습해 보기를 바란다.


언어가 언어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은 당신의 역할이 크다는 점, 기억해 주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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