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살 좀 쪄야겠다."
"맞아요. 맛있는 것 좀 사주세요!"
태어날 때부터 약했고 지금도 약한 나를 처음 본 사람들과의 대화는 늘 저렇다. 너무 오랜 시간 그 말을 들어왔고 마른 내 몸이 예쁜 몸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예쁘지 않은 몸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이 그저 '내 몸이 이런 것을 뭐 어쩌겠어? 맞는 말씀 하시네'라는 마음으로 나의 마른 체형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스트레스로 들리는 저 말을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타인의 몸에 관심이 많을까?)
결혼을 하고 시간이 갈수록 학교 시험과 공부 이야기가 아니라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의 주제가 이야기로 자주 떠오르는 지금은 내 몸을 향한 다른 말이 추가되어 있다.
"너는 진짜 애 낳다가 죽겠다." 다행히도 무례한 낯선 이들이 아니라 이 정도 농담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친한 친구들이 건네는 말이다. 너무 맞는 말이라서 나 역시 격하게 공감하기도 하는 이 말.
학교 다닐 적에 가정 시간이나 성교육 시간에 간략히 배우기만 했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서 무척이나 힘들다는 것만 알고 있는 임신과 출산.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고 간접적으로 듣는 이야기들은 죄다 하나같이 '힘. 들. 다'라는 이 세 글자로 뭉뚱그려서 전해받는지라 막연히 힘들겠지라는 생각만 들뿐,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무서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농담 아니라 저는 정말 애 낳다가 죽을 것 같거든요)
모든 두려움은 낯선 것에서 기인하고 내가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온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감을 덜고 싶다면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담대히 맞서려면 무엇보다도 내가 하고자 하는 대상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야 막연한 불안감을 덜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설 수 있을 테니까.
역시 모르면 책으로 배워야지!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을 빌려 읽으면서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내디딜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 코너 앞에 섰다. 엄청나게 많은 육아 서적과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바이블이 꽂혀있는 것을 보면서 저출생은 딴 나라 이야기라니까..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출산과 육아는 둘째 문제고 일단 첫 관문부터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집어 든 책 속에서 나는 충격과 공포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임신성 당뇨, 임신으로 인한 고혈압, 임신중독증, 산후우울증,, 임신을 하면 그저 입덧만 있는 줄 알았더니 임신으로 인해 이토록 다양한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니! 하지만 이러한 상태들이 병이 든 것이 아니라 임신으로 인해 기인한 자연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생명을 품고 있는 엄마는 아프지만 그것이 아픈 상태가 아니라고 정의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질병 같지만 질병 아닌 고통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무엇보다도 산후우울증이 가장 현실적인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당뇨나 고혈압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임신성 당뇨나 고혈압 등은 체감이 되지 않았지만 한번 우울증을 겪어본 나로서는 그것이 얼마나 처절할지 확 와닿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명은 딸로 태어난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기나긴 싸움을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희생했을 때 비로소 탄생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 낳고 키우는 것보다 임신이라는 첫 관문부터가 엄청난 퀘스트 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