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는다고 안 되는 것도,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만약 출산을 하게 된다면 남편의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기간을 생각해서 연말이 다가오는 겨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아기를 낳는다면 11월 정도가 좋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상상했다.
"만약 내년 11월쯤 출산을 원한다면 언제부터 임신을 시도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과연 무엇일까? 검진 차 방문한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생각하는 기간에 아이를 낳고 싶다면 언제 임신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냐는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확고한 표정과 단호한 어조로 "지금부터요"라고 대답하셨다. 내년 11월이 되려면 한참 남았는데 지금부터라니!
여태 들어온 임신 과정들이 대부분 피임 없는 성생활 도중에 갑작스럽게 임신이 되었다는 경우를 많이 접해서 그런 걸까 당연히 피임 없이 배란일만 맞추면 바로 임신이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10달을 머무니까 11월을 원한다면 10개월 전인 1월이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1월의 배란일에 피임 없이 시도하면 됩니다'라는 대답을 예상했건만 예상이 빗나가도 단단히 빗나갔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의 표정을 읽으셨는지 뒤이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젊은 20대 초반의 남녀가 임신을 하게 될 확률은 고작 29퍼센트입니다 무척 낮죠." 아, 여태 내가 알고 있던 임신에 대한 생각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구나! 피임을 하지 않을 경우 99퍼센트의 확률로 임신이 되는 줄 알았던 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토록 낮은 확률이라니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읽었던 기억이 스쳤다.
불임으로 진단받은 적이 없는 가임 부부는 1사이클당 수태능(아이를 임신하는 능력)이 평균 20%이고, 부부관계를 적절하게 시간을 맞추어한다고 하여도 임신 확률이 35%를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신준비부터 출산까지 임신 준비 편 p.66]
와우, 의사 선생님 말씀이나 책이나 똑같이 확률이 낮다고 하는구나. 그 많은 임신들이 5번 중의 1번의 확률로 성공하는 것이었군.. 예상외로 낮은 확률에 놀라고 내가 이토록 무지했구나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더 놀랐다. (다행인 건 저자의 주변 지인들도 대부분 99%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휴, 나만 너무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 기간을 딱 정해놓고 한다고 해서 한 번에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뼈 때리는 말씀이다.
아무리 세상이 많이 발전해서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을 통해서 생명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해도 병원 측에서 성공 확률을 정확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로 미뤄보아, 수많은 시술들이 즉각적인 성공을 보장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지극히 낮은 확률이라는 이유로 피임 없이 관계를 즐기는 이들이 덜컥 임신하게 되어 당혹스러워하는 경우로 보나, 그토록 원하는 임신을 때에 맞춰서 시도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이들로 보나 역시 생명은 하나님의 주관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임신 뭐 그냥 까짓 거 배란일만 잘 파악하면 한 번에 성공하지!"라고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생각과 달리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