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길에 마주 보고픈 영화 한 편
봄길에 마주 보고픈 영화 한 편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오프닝은 선물이라 생각할 만큼
행복이랑 기쁨을 흩뿌린 춤과 노래입니다
시작부터 감미로움이요 들뜸이며 기대만발이랍니다
감미로운 꿈에 사로잡힌 꿈꾸는 소녀 로버츠가
살랑대는 봄꽃바람에 취해 꿈을 꾸는 아리따운 시간
현실을 우악스레 사로잡은 악당 디아즈가 나타나 달콤한 꿈을 한순간에 밀어버리고 맙니다
삶이란, 일상이라는 동화 같은 꿈결의 현실이란,
이런 건가 봅니다 하하하
운명은 냇물처럼 떠나버린 어린 날의 기억처럼,
잡고 싶었던 어느 한 순간처럼,
가까이서 하얗게 웃음 짓고 싶었던 한 사람처럼,
봄꽃이 창백하게 흩어짐처럼,
가버리고 맙니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멀어지면 잊힐지라도
더더욱 선명하고
주위를 떠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환상과 동화 같은 잔영을
그리움이나 보고픔이라 부르는 요정이 곁에 있어 행복합니다
연둣빛깔 사이로 생강나무 꽃이랑 진달래랑 산벚꽃이
울긋불긋 어여쁜 얼굴로 물든 뒷동산은 기쁜 사랑을
형형색색으로 보여줍니다
희한한 시간의 묘미들이, 아스라한 추억들이,
아지랑이처럼 푸르게 일어섭니다
사랑은 우습고 간당간당합니다
그 순간에서야 끊어질, 바로 그 즈음에서야 비로소
잃어버리는 아픔을! 멀어지는 설움에 복받쳐 기꺼이 당기어봅니다
아스라한 시간이 푸른 물결처럼 출렁이며 스러집니다
환희 같던 시간의 잉걸들이 깜박이며 다가섭니다
나른한 시간의 배고픔처럼
갈구하는 모든 것들이 꿈이나 환상이 아닌
밥처럼 배부르게 하는 현실임을 뼈저리게 통감합니다
사랑은 꿈일까요?
아님 환상일까요?
사랑은 다가오는 걸까요?
쟁취하거나 탈취하는 걸까요?
아니면 운명이나 우연이나 인연이라 해야 하는 걸까요?
사람을 만나 사랑으로 살며 시간과 공간을 가르노라면
공포와 두려움 못지않은 갈망 같은 외로움과 쓸쓸함이 있고요
삶이라는 창문엔,
덕지덕지 그을음처럼 새까많지만 기름을 바른 듯 반들거리고
반짝이는 얼룩들이 있게 마련이지요
봄바람처럼 정신없고 봄꽃처럼 흐드러졌으면서도
봄날처럼 흔적 없이 스러지는 얼룩들이
나이테 한줄한줄마다 거미줄처럼, 서캐처럼 덕지덕지 붙어있습니다
물에 젖은 짐승이 몸을 흔들어 떨쳐버리는 순간의
은빛 물방울 같은 시간의 흩어짐에 반짝입니다
애착 집착 그럼에도 어디론가 떨어져버린 허물 같은 흔적들이
시간을 타고 날아든 자국들이 흐드러집니다
그런 흔적들은 노래에도 묻어있고 장소에도 있으며
손때 묻은 물건들에도 있습니다
물론 영화로도 모두를 상관 지을 수 있답니다
그런 영화중에 봄날의 얼굴 같은 푸른 피가 도는 영화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라는 영화랍니다
우스갯소리가 난무하고
스토리는 난잡하며 산만하고
어쩌면 시간 때우기 식의 명랑영화일지라도
그 안에서 인생을 보고, 삶을 보며, 인간의 내면과 본성을 봅니다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들요
영화가 나에게 던져준 감동의 장면이 있습니다
사고하고 사과하며 뉘우치는 모습이랑
미니언의 목소리로 아이들이 Annie's Song을 부르는 장면이었어요
어찌나 가슴 뭉클하던 지요
생각할 줄도 사과할 줄도 모르는
그런 사회에 살다보니 더욱 그랬나봅니다
시간이 빨갛게 익은 사과처럼 맛있어 보입니다
이 영화를 들여놓은 지 대여섯 해가 지난 듯한데
이제야 보고나니
뿌듯하고 입가에 미소가 봄꽃처럼 퍼집니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한 번 더 보고픈 영화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다시금 맨 처음의 평화롭고 웃음꽃이 피어나며
행복하고 기쁨이 춤을 추는 장면으로 돌아갑니다
행복은,
더불어 사는 삶에 드리운 빨랫줄에 하양 빨래가 푸른 하늘에 찰랑이고
전깃줄에 앉은 새들의 노랫소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눈물도
웃음도
돌아보니
모두 사랑이 피운 한 떨기 꽃이었답니다
이쪽이 나의 사랑은 아니었지만, 또 다른
저쪽은 나의 사랑으로 활짝 웃고 있답니다
놀라지 마세요
나의 눈앞이 아니라
나의 등 뒤에서도 사랑은 환하게 웃고 있다는 것을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 어떤 영화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어요
봄꽃 흐드러진 그늘 아래 쓸쓸하게 드리운 행복이라고요
머잖아 그곳에도 밝고 따스한 햇살이
들어올 바로 그 응달이라고요..,
먼데 봄꽃 사이로 이 쓸쓸하고 고독한 가슴 먹먹함 속으로
한아름 뛰어들 듯 한 그리움이 텅 빈 꽃비사이로 처연히 스러집니다
벚꽃 핀 자리론 새빨강 철쭉이 터질 듯 한 아픔처럼 아련하게 일어섭니다
Annie's Song
올 봄조차 오지 않을 허깨비처럼
가슴을 파고들어 하얀 그리움처럼 스러집니다
2017 봄
휘파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