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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 Jun 14. 2022

4.1 존재에 관하여

4.1.3 생명의 실존

세상에는 수없이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물질들이 존재한다. 그중 가장 신비한 물질은 단연 생물(生物)일 것이다. 그 이유는 인류가 아직 생물의 발생과 소멸의 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아는 사실은 지구상에 생명이 나타났고 지금껏 실존하며,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 정도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다양’이란 표현에는 약간 곤란한 구석이 있다. 생명의 다양성을 따라 영역을 확장하다 보면 그 끝자락에서 무엇이 생명체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대사·생장·진화 등으로 그 물질 구조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생명의 특성상 생물을 특정한 물리적 상태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기능 따위를 기준으로 생명과 비(非)생명을 나누려니 생물이 아님에도 생명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인공지능이나 바이러스 등이 거슬린다.* 또 자유의지나 의식의 유무로 구분하려니 단세포 생물이나 식물처럼 뚜렷한 의지나 의식이 없이도 유전체의 기계적 원리만으로 생식하고 분화하는 생물이 있다. 이러한 생명의 모호성을 역으로 확장하면 도대체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꽤나 충격적이지만 그리 당황할 것은 없다. 사실 대부분의 존재 정의는 필연적으로 비슷한 문제를 가지기 때문이다.

잠깐 화제를 돌려 바다에 대해 생각해보자. 바다의 사전적 정의는 ‘지구상에 육지를 제외한 짠물이 괴어 하나로 이어진 넓고 큰 공간’이다. 이 정의를 근거로 바다와 이어진 강의 끝자락에 소금을 풀면 그 강은 바다가 되는가? 그것은 아니다. 또한 바다에서 바닷물을 한 컵 떠내면 하나의 바다가 단절되었으므로 바다는 더 이상 바다가 아니게 되는가? 이 또한 아니다. 허튼 생각 같지만, 이러한 사고를 계속하다 보면 바다의 정의가 어딘가 엉성하게 느껴지고, 혹시 우리가 아는 바다가 꽤나 추상적인 단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낄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이 옳다. 바다는 당신이 정의한 추상적인 존재가 맞다.

사실 세상의 모든 개별적인 존재는 각자의 인식 속에 존재하며, 그 정의는 각자가 내리기 나름이다. 무엇보다 존재의 인식체계와 교류법인 감각기관, 운동기관, 시공간, 문화, 언어, 학문, 종교 등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므로, 당신이 인식한 존재는 모두 당신만의 추상인 셈이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추상일지라도 당신이 인식한 바다는 정녕 존재하는 것이 맞다. 정의가 모호하다 하여 돌을 빵처럼 먹을 수 없으며, 법과 도덕률을 무시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존재에 대해 더 확실한 증명이 필요하다면 내가 당신의 바다를 함께 바라봐줄 수도 있다. 비록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당신의 바다가 아니라 그저 반사된 빛의 물결에 그칠지라도, 내 눈이 당신의 바다를 향하고 있다는 추상적 행위만큼은 당신에게 명백한 진실 아니겠는가? 그럼 된 것이다.

꽤 먼 길을 돌아왔다. 이제 나와 당신은 생명의 실존을 정의하기 위해 어떤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생명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생명에 대해 가장 최소한의 정의를 취하고자 하며, 당신도 그것을 받아들여주길 원한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각자 자신에 한정하여 현재 살아있고 존재하는 생명체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쉽고 가벼운듯한 선언은 결코 쉽지도 가볍지도 않다. 당신의 그 선언을 통해 당신을 비롯한 세상 모든 것이 존재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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