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더 존재하는 존재
물질은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물질이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상태의 변화에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단적으로 돌멩이를 주워 모래처럼 잘게 부순들 돌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약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는 돌을 부순 자에게서 비롯할 것이다. 이처럼 물질은 분명 우리의 시공간에 함께 존재하고 있으나, 상태의 변화를 통해 존재를 주장하지 않는다. 돌은 돌일 때나 모래일 때나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인식한 모든 존재와 그 상태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받은 존재는 인간의 판단에 따라 그 존폐를 결정당한다. 존재의 유익여부가 인간의 생사와 직결되어 있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비근한 예로 한국의 논에는 자연적으로 자랄 수 있는 벼보다 훨씬 많은 양의 벼가 자란다. 그 이유는 볍씨에 담긴 탄수화물이 인간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주요한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기계처럼 석유로 움직이는 존재였다면, 논밭의 수많은 농작물들은 지금처럼 번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의미부여 능력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예를 들어 자연 상태에서 유리(규사)는 존재하지만 유리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들은 유리컵을 사용한다. 이것은 누군가가 컵의 쓰임새와 유익을 생각하고, 유리를 컵의 형태로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유리컵이 세상에 나타난다. 이렇듯 인간은 이미 존재하는 물질에 의미와 가치를 더하여 당신이 생각하기에 바람직한 길로 인도한다. 그것이 인간이 깨달은 바, 존재를 더 존재하게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