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형 강아지

by 모아진빛

MBTI가 유행의 영역을 벗어나 개인 신상의 영역으로 진입한 요즘,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INFJ(P)라는 나의 MBTI를 빼놓지 않고 있다. 이 네 글자만 전달하면, 나는 처음 만난 상대에게도 나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과 생각이 많고 감성적인 성격을 손쉽게 전달할 수 있을 뿐더러, 나의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를 내 성격탓으로 돌려 나를 변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과 넘쳐나는 업무에 가끔 사회성이 박살나는 순간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으로, 급한 성격과 조바심은 계획적인 성향 때문으로, 그런 주제에 엄청 지저분한 책상 위는 J와 거의 비등비등하게 높은 P 성향 때문으로- 둘러대며 이런저런 상황을 모면해 가고 있는 중. 누군가는 비과학적이고 근거없는 이야기라 하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이래저래 편리한 이론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 MBTI가 나를 꽤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특히 언제 어떻게 검사해도 거의 7~80퍼센트에 달하는 내향성은 나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랄까. 가끔 장녀병이 도져 뭔가 해결할 일이 생길 때면 F 성향보다 T 성향이 강해지기도 하고, 격무에 시달리며 여유가 없을 때면 N 성향보다 S 성향적인 면모가 더 두드러질 때도 있지만, 나의 '내향성'만은 상황을 막론하고 한결같이 굳세다. 가끔 낯선 장소에서 어색함을 못이겨 1~20퍼센트의 외향성이 힘을 낸 날은 그날 뱉은 말에 대한 후회와 반추로 2박 3일은 앓아 누워야 할 정도로 나는 파워, 대문자 I 성향의 사람이다.


그리고 강아지는 주인을 닮는다고 했던가. 사람들을 만나면 꼬리를 홰홰 흔들며 자신을 쓰다듬어 주길 바라고 친구 강아지가 보이면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고 함께 노는 강아지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와 달리 나의 강아지는 사람을 경계하고 강아지를 싫어하는 극심한 내향형이다. 산책을 나갈 때면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들에게 왈왈 짖고, 웃으며 산책을 하는 다른 강아지들과는 호전적인 기세로 기싸움을 해 주인인 나를 연신 사과하게 만드는 강아지. '어떻게 이 큰길을 너 혼자 걸어다녀-!' 투덜거리며 걷는 매일이다.



처음 강아지를 데려오고, 우리 가족들도 나름대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아직 서너 살의 어린 나이에, 다견 가정에서 기가 센 강아지들에게 치여 이렇다 할 관심을 받지 못하고 컸던 강아지가 우리는 너무 안쓰럽고 불쌍했다. 대단한 것도 아닌 장난감 터그놀이와 집앞 산책에도 헥헥거리면서 좋아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예쁜지. 우리는 이 강아지에게 강아지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의 많은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처음 시도한 것은 집에서 좀 떨어진 큰 공원에 위치한 강아지 운동장에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땐 운전면허도 없을 때라 동네를 벗어나자 이젠 그만 걷겠다는 저질 체력의 강아지를 품에 안고 한참을 걸어 공원까지 가곤 했다. 헉헉거리며 공원에 도착한 뒤 강아지를 내려놓으면 강아지는 신나게 흙길을 걷고 풀냄새를 맡으며 웃음을 그칠 줄 몰랐고, 그것만으로도 보람 있는 여정이었다.

함박웃음을 짓는 강아지의 사진을 열심히 찍고 난 후에는 공원 안쪽에 위치한 강아지 운동장으로 향했다. 강아지 운동장은 꽤 넓고 깔끔했고, 목줄을 풀고 자유롭게 달리는 강아지들로 활기가 가득했다. 자길 예뻐할 사람을 알아보고 먼저 다가와 코를 들이미는 강아지들도 있었다. 그렇게 사람이든 강아지든 삼삼오오 모여 웃음꽃이 피는 운동장에 우리는 잔뜩 굳은 강아지를 안고 입성하였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강아지의 목줄을 조심스럽게 풀어 흙바닥에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우리 강아지는-


부리나케 입구로 달려가 문을 쳐다보며, 문만 쳐다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뒤를 돌아볼 줄 모르는 강아지를 안아들어 운동장 안 쪽에 내려놓고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주인인 나를 따라 쫄랑쫄랑 걸어오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사진도 영상도 잔뜩 남겼다. 후다닥 빠르게 달려간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모아야!하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와 안기는 게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짧은 구보를 마치고 잠시 구석진 의자에 앉아 이 예쁜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려는데, 글쎄 입가에 하얀 침이 가득한 게 아닌가. 처음이라 긴장해서 그런가-, 입가의 침을 손바닥으로 쓱쓱 닦아주고 다시 목줄을 하자 살짝 쳐져 있던 강아지의 꼬리가 다시 뿅- 하고 솟았다. 이제 가자- 바닥에 내려놓으며 엉덩이를 두드리자 강아지는 입구쪽을 향해 앞서 걸으며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사회성도 길러줘야지. 우리는 그 이후로도 기회가 될 때면 가끔 공원으로 산책을 갔고, 강아지 운동장을 한두 바퀴 돌다 왔다. 하지만 우리 강아지는 여전히 문 앞에 시위하듯 서 있거나, 입에 거품침을 잔뜩 묻힌 채 우리만 따라 걷거나, 심지어 강아지 운동장이 가까워 오면 그쪽으로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리에 힘을 팍 주고는 멈춰 서곤 했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가지 않겠다 고집을 부리면 안아서 옮겨주고, 강아지보다 더 열심히 운동장을 돌고, 못 이기는 척 따라오는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고 칭찬하며 강아지가 부디 그 공간을 좋아할 수 있길, 다른 강아지들처럼 친구들과 같이 신나게 뛰어 놀 수 있길 바랐다.

그러한 노력이 통한 것일까. 어느 날은 주변의 강아지에게 슬금슬금 가서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쉬고 있는 자신의 주위에서 정신 없이 뛰는 강아지들에게 엄하게 왈왈-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이제 좀 적응을 했나 봐! 뿌듯한 마음으로 강아지를 지켜보며 기뻐하기도 잠시, 주변을 정신 없이 뛰어 다니는 강아지들에게 훈수를 둔다고 그 앞을 가로막고 엄하게 왈왈- 짖다 그만 그 친구들에게 살짝 부딪혀 흙바닥을 두세 바퀴 구르는 참사가 일어났다.

군데군데 흙이 묻어서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강아지를 보며 귀여워 잠깐 웃음이 터졌지만, 이내 첫 유치원 등굣날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외따로 앉아있던 나를 보며 눈물을 훔쳤다는 엄마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흙을 탈탈 털어주고 꼬질꼬질해진 몸을 연신 쓰다듬으며 나는 이 사회성 떨어지는 강아지에게서 내 모습을 보고 내 마음을 읽었다. 고생했겠구나-, 괜히 안쓰러운 마음에 강아지를 소중히 안아 들고 강아지 운동장을 나서며 나는 내 강아지가 그랬던 것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강아지 운동장은 어쩌다 한 번씩 가곤 했지만 목줄 없이 선선이 산책을 하려는 까닭이었고, 전처럼 애써 강아지를 그곳에 적응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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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공원은 강아지가 제일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이다


대신 우리는 인터넷을 뒤져 독채 팬션을 찾아냈다. 가격대는 좀 있었지만, 성수기를 피해 선선한 날 일박이일 정도는 다녀올 만하다 생각했고 곧 실행에 옮겼다. 좋아하는 잔디밭이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는 팬션 곳곳을 활보하는 강아지를 보는 건 무척 기쁜 일이었다. 문 하나만 열면 바로 잔디밭으로 달려가 볼일을 볼 수 있는 공간이 강아지도 퍽 좋았던 것 같다. 한밤중에도, 모두 잠든 새벽 6시에도 마당 쪽 창을 긁으며 문을 열라 신호를 주는 바람에 우리는 누워 있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야 했다.

그렇게 알차고 뿌듯한 일박이일을 보내고 다음에 또 오자, 긍정적인 후기를 나누며 뿌듯하게 차에 탄 우리는 일박이일 중 가장 활짝 웃으며 자기 자리에 엎드리는 강아지를 보며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동네에 도착해 집에 들어가기 전 한 차례 산책을 하자 세상 용맹스럽게 이곳저곳 냄새가 바뀐 곳을 살피는 우리 강아지. 일박이일의 고생이 십 분의 산책에 밀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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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션 이곳저곳을 누비는 강아지


잘 모르는 사람, 처음 보는 강아지들과 섞여 지내야 하는 새로운 공간에선 겁많은 쭈구리이지만 자신의 나와바리에서는 한없이 강해지는 내 강아지. 자신의 냄새로 가득 찬 우리의 집, 골목골목 훤히 익숙한 동네를 함께 누빈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강아지는 주인 앞에서만 용맹한 방구석 여포로 살아왔다.

오늘도 아침저녁으로 인도를 달리는 오토바이와 산책길에 만난 강아지들에게 왈왈- 짖는 강아지를 어르고 달래며 수발을 들었지만, 이 내향적인 강아지에게서 엄한 언니이자 누나, 예민한 큰 딸인 내 모습이 보일 때면 여전히 헛웃음이 절로 난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나면 세상 당당한 자세로 뒷발을 차며 뒷처리를 하는 나의 주변을 맴도는 용감한 내 강아지.

또 한번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추석 연휴를 포함해, 이 내향적이고 소심한 강아지와 이어갈 모험들이 계속 이어지길-. 강아지보다 더 소심하고 내향적인 주인의 가장 큰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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