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해.

by 모아진빛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 예스24』를 읽고-


1. 엄마는 나를 너무 사랑해.

젊은 시절 엄마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숨겨야 했다. 그래서 언제나 어린 나를 두고 ‘엄마는 Y를 너무나 사랑해.’ 맹세하듯 속삭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가까워질 수 없는 시댁 식구들에게 나를 맡기고 도망치듯 서울로 돌아가던 순간에도, 헤어질 때마다 몸부림치며 우는 어린 나를 더 이상 시골에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일을 그만두기로 했을 때도,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없으면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던 나를 달랠 때도. 엄마는 나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언제나 처음처럼 고백하곤 했다.

그 사랑은 내가 키도 생각도 훌쩍 자란 사춘기 소녀가 된 이후에도 한결같았다. 별별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다가도 별안간 짜증을 내며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 예민한 딸을 두고 엄마는 여전히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하고 속삭였다. 엄마는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사랑한다는 말 뒤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엄마가 네 맘을 잘 몰라줘서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으니까 나와서 밥 먹어. 별것도 아닌 일에 상처받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슬퍼하고, 큰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씩씩거리는 뾰족한 마음은 엄마의 고백에 시큰대며 가시를 눕혔고, 왜 분이 나는지도 모르면서 분이 풀리지 않은 나는 엄마의 ‘미안하다’는 말이 참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너무나 사랑한다 고백한다. 다 큰 딸이 제가 먹은 그릇을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거나,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다고 문을 닫고 들어가 키보드나 뚝딱뚝딱 두드릴 때도, 엄마는 싱크대 앞에 가만히 서서 이제는 말만 한 나를 ‘예쁜 내 새끼-’ 하고 부른다.

미술관 전시나 뮤지컬 공연 등, 좋은 것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나 한 번씩 함께 외출하는 길, 예정보다 지체된 상황에 뾰루퉁한 딸에게 엄마는 환한 얼굴로 딸이 있어 너무 다행이라 고백한다. 설레어 하는 엄마의 옆얼굴, 포토존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모습, 기념품샵에서 이것저것을 집었다 내려놓으며 고민하는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뒤통수. 별 감흥 없는 얼굴로 자신을 따라다니는 무뚝뚝한 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엄마는 행복한 표정으로 말한다. ‘엄마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라고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말한다. 때때로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 보이는 지친 얼굴로 엄마는 ‘네가 있어서 엄마는 살아갈 수 있었어.’라며 스스로를 설득하듯 이야기하기도 했다, 많은 순간 나는 엄마의 그 마음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꼈고, 가끔은 엄마가 하는 말이 너무 어렵고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이따금 엄마의 마음을 너무나 무겁고 귀찮게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뒤돌아선 나의 등에 대고 엄마는 쉼 없이 사랑을 외쳤다. 엄마는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출퇴근길의 붐비는 지하철과 입덧을 참으면서도 매일 출근 도장을 찍던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P’라는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아닌 ‘Y 엄마’로 불리기로 결심했다. 엄마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열이 펄펄 올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날에도 불 앞을 떠나지 못하고 저녁거리를 뚝딱뚝딱 만들어 상을 차렸다. 흐트러진 머리와 요리의 흔적이 여기저기 튄 옷을 정리할 새도 없이 나의 머리를 빗어 넘기고, 가장 깨끗한 옷을 골라 입힌 뒤 지갑을 뒤져 용돈을 쥐어 주었다. 엄마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렇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 동안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현관을 나서는 딸의 뒷모습에 세상 가장 밝은 웃음으로 손을 흔들며 이것이 엄마의 가장 큰 보람이고 행복이라 생각했다.

주는 것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마음을 남김없이 부어주면서도 늘 부족해 미안하기만 한 마음, 엄마는 그런 마음을 ‘사랑’이라 칭하며 인생의 반 이상을 ‘Y 엄마’로 살아왔다.



2.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


나 역시 나와 가족들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엄마의 기대와 외로움을 채워주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다해왔다. 어린 시절, 자신의 장래 희망과 부모님이 원하는 장래 희망을 적어 오라는 숙제를 받으면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엄마가 적어준 단어를 한 번 더 또박또박 적었다. Y는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자기주장이나 글 쓰는 걸 잘하니까 변호사가 되면 좋겠다- 하면 변호사를, Y는 목소리가 차분하고 모 아나운서의 라디오를 즐겨 들으니까 아나운서를 해도 좋겠다- 하면 아나운서를.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나의 꿈은 늘 엄마의 꿈이었다.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나는 나의 성공과 성장만큼 엄마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했다. 학급의 임원이 되거나 선생님의 칭찬을 받은 날, 받아쓰기나 수학 시험을 잘 본 날이면 내가 이룬 성취보다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할 엄마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수업이 끝나면 가방을 챙겨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기뻐할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물론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는 날은 엄하게 혼이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눈물과 콧물을 쓱쓱 닦고 엄마가 해주는 달콤한 간식을 먹으며 다음엔 이것보다 더 잘 봐야지 다짐하곤 했다.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엄마를 외롭고 괴롭게 만드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커가면서 엄마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엄마가 흉을 보는 동네 아주머니부터 늦은 밤까지 엄마를 기다리게 하는 아빠, 엄마를 언제나 서운하게 하는 할머니까지. 엄마가 그들에 대한 감정을 훌훌 털어버리고 난 후에도 나는 엄마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를 곱씹으며 기억했다.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사람 좋은 엄마 몫까지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고 미워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엄마를 상처 내기도 했다. 나는 엄마를 너무나 사랑해서 사춘기 시절 원인을 알 수 없는 복잡미묘한 마음을 엄마에게 풀어내곤 했다. 아 몰라, 아 짜증나, 아 싫어. 부정적인 단어들을 툭툭 내뱉고 문을 걸어 잠그면서도 나는 문밖에 선 엄마의 거동을 신경썼다. 나는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고, 엄마도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것을 알았다. 불안한 마음은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는 엄마의 손과 그래 이번에도 내가 너에게 졌다는 항복 선언에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 후, 조금은 철이 든 나는 멋진 풍경과 새로운 경험 앞에서 종종 엄마를 떠올린다. 이 좋고 멋진 것들을 엄마도 한번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예매를 마치고, 엄마와 미술관이나 뮤지컬 나들이를 가는 날이면 잔뜩 기대에 차 준비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긴장되는 마음을 숨긴다. 근처 맛집 중 엄마의 입맛에 맞을 것 같은 곳들을 추리고, 엄마와 비슷한 색이나 재질의 옷을 꺼내 입으며 나는 내가 즐거운 만큼 엄마도 즐거워 하길 바란다.


‘나는 엄마를 너무나 사랑해.’하고 엄마에게 소리내 말한 적은 없다. 하지만 늦은 밤 조용히 한숨을 쉬는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문득 불안감에 가슴이 뛰곤 한다. 나는 엄마를 너무나 사랑해서 평소 몸 이곳저곳이 아프다는 엄마의 말을 투정처럼 흘려넘겼으면서, 혹시 몰라 큰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초조해한다. 나는 엄마를 너무나 사랑해서 엄마를 떠나 홀로 서야겠다 결심했음에도 엄마가 나를 먼저 떠나게 될 순간을 두려워한다.

여전히 나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하는 엄마에게 나는 종종 ‘땡큐’, ‘고마워’하고 마음을 표현한다. 내 감사 인사에 엄마는 빙그레 웃기도 하고, 이 정도는 당연한 게 아니냐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같이 미소 지을 때도 있지만, 나는 엄마를 너무나 사랑해서 내가 뱉는 ‘고맙다’라는 말이 참 무책임한 말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자신이 가진 많은 것을 아낌없이 부어주면서도 늘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나는 가끔 고마워한다. 나는 엄마를 너무나 사랑해서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모으는 어린아이처럼 내가 뱉은 ‘고맙다.’는 말 너머의 사랑을 한 닢, 두 닢 모아왔을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스스로가 세상에 둘도 없이 나쁜 사람처럼 느껴지고야 만다.



3. 우리는 서로를 너무 사랑해.


사랑은 온유하며 교만하지 않은 것이라 했던가. 하지만 우리가 나눠온 사랑의 역사는 온유하기는커녕 때로 너무나 날카롭고 거칠었고, 때때로 교만하고 오만했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아서 그리고 너무나 많이 닮아서, 언제나 서로의 가장 약한 마음을 상처 내고 보듬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사랑은 쉬지 않고 물결치는 바다와 같아서, 몰아치는 태풍에 높은 파도가 일다가도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거짓말처럼 잠잠해진 물결 위로 윤슬이 반짝이는 순간이 이어지듯이, 엄마와 나의 마음 역시 때론 높게, 때론 잔잔하게 일렁이며 흘러왔다.

그 모든 순간 우리는 행복하기도 아프기도 기쁘기도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로 인해 조금 더 크고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의 변화만큼 엄마는 작고 연약해지는 시간의 흐름이 야속하지만, 그럴수록 나의 마음을 들쑤시는 엄마의 ‘미안해’의 힘은 점점 커질 것이다. 그리고 엄마를 향한 나의 ‘고마워’에도 조금씩 책임이 실리겠지.


나는 엄마를, 엄마는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우리는 이렇게 같은 도형의 모습을 하고도 함께 뭉쳐 삐걱거리며 굴러왔다. 이제는 나는 나로, 엄마는 엄마로, 그렇게 오래도록 우리 둘로. 이 다사다난한 여정을 담담히 이어나가기를. 그러는 동안 쉬지 않고 이어질 엄마의 수다와 나의 무뚝뚝한 대꾸를 떠올리니 조금 벅찬 기분이 든다.


2025년 7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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