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강아지는 심장병을 앓고 있다. 10살 무렵 진단을 받았으니 투병을 시작한지도 벌써 만3년차가 넘어간다. 처음에는 목에 뭐가 걸린 듯 기침만 한 번씩 켁- 켁- 하더니 햇수가 쌓여가며 쇠하고 약해지는 곳도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바둑알처럼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는 가운데부터 회색빛으로 바래져 가고, 꽤 풍성해서 미용을 해도 한두 달이 지나면 처치가 곤란하던 털도 이제는 하도 긁어 붉게 변한 피부가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다. 아침저녁으로 기침하는 횟수도 잦아지고, 무엇보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한번씩 몸이 빳빳이 굳어 뒤로 넘어가며 발작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첫 발작은 올 봄이었다. 주말 아침 평화롭게 산책을 하던 중, 마음에 드는 곳에서 빙글빙글 돌며 자세를 잡던 강아지는 별안간 끼잉- 하는 소리와 함께 철푸덕 보도블록 위로 쓰러졌다. 낑낑거리며 괴로워하는 강아지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괜찮다 괜찮다 안심을 시켜주는 몇 분의 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점점 뒤로 젖혀지는 목을 손가락에 힘을 줘 받쳐 들고 몸 이곳저곳을 쓸어주는 동안 어느새 훌쩍 다가온 이별의 순간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한참을 낑낑거리던 강아지는 잠시 후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뻣뻣하게 굳어 힘을 주지 못하던 네 발로 땅을 딛고 선 강아지는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리둥절해했다. 강아지가 남긴 흔적을 처리하고 품에 안고 집에 돌아오며 나는 정말 다행이다, 다행인 일이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시작된 발작은 짧으면 한 주, 길면 한 달의 텀을 두고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 차례 장마가 끝난 뒤 외진 골목길에서, 산책하는 동료 강아지를 만나 흥분해 짖던 아침 산책 길에서, 하기 싫은 목욕을 마치고 이리저리 도망다니며 털을 말리던 소파 위에서. 끼잉- 강아지의 새된 비명 소리와 함께 발작은 예고 없이 시작된다. 언제 겪어도 심장이 덜컥 내려 앉고 등에서는 식은 땀이 절로 나는 순간이다. 아직은 아니다, 이번은 안 된다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몸 이곳저곳을 주무르다 보면 다시 부스스 일어나 앉는 강아지. 그렇게 나와 내 강아지의 하루는 기적처럼 연장된다.
날로 쇠약해지는 강아지를 지켜보며 우리는 언젠가 찾아올 그날에 마음을 다지는 한편, 강아지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날로 몸무게가 줄어가는 강아지를 위해 특별한 날에만 먹이던 수제 간식집의 특식을 거의 매일 같이 대령하고, 점점 양이 늘어가는 약을 먹이려 각종 과일과 간식들을 섞어주고, 양치나 빗질 같이 강아지가 하기 싫어하는 것들은 컨디션이 좋아질 때까지 일단 잠정 보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원래도 자기 주장과 고집이 센 내 강아지는 날로 더 콧대가 높은 공주님이 되어가고 있다.
이 까다로운 공주님을 모시며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아무래도 산책이다. 올 여름 폭염주의보가 거의 매일 같이 내리던 날에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퍼붓던 날에도, 실외배변견인 내 강아지는 시간이 되면 늘 엄한 얼굴로 현관문 앞을 지키고 서서 어서 나가자 나를 채근했다. 막상 나가면 덥고 뜨겁다고, 습하고 축축하다고 걷지도 않을 거면서! 각고의 노력으로 강아지만 뽀송하고 나는 땀과 비에 젖어 돌아오는 매일이었지만, 그래도 배변 문제와 노견이 된 내 강아지의 컨디션은 꽤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그렇게라도 배변을 마치고 오면 하루가 개운했다.
한번은 비가 몹시 오던 날 강아지를 안아 들고 나가 겨우 쉬를 누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 떡볶이와 순대를 사온 적이 있었다. 왼팔로는 강아지를 안고, 오른손으로는 분식집 비닐봉지를 우산 손잡이에 건 채 불편하고 불안한 자세를 몇 번이나 고쳐 잡았다. 웬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얌전히 안겨 있던 강아지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순대 간을 달라 보채기 시작했고, 비에 젖은 몸을 씻지도 못하고 강아지에게 순대 간을 잘게 잘라 주며 나도 급하게 요기를 했던 날이 강아지에게는 퍽 좋은 기억으로 남았나 보다.
그래서였을까, 얼마 전 하루 종일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날. 퇴근 후 축축한 바닥에 한참을 걷지 않으려는 강아지를 이리 당기고 저리 밀어보며 산책을 이어가던 나는 별안간 어느 시점부터 신나게 걸어가는 강아지의 씰룩거리는 엉덩이에 의아해하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허리를 굽혀 씌워주는 우산도 마다하고 씩씩하게 걸어 도착한 곳은, 얼마 전 함께 떡볶이와 순대를 사러 왔던 동네 분식집이었다.
딱 한 번, 그것도 비가 많이 오던 날 품에 안겨 왔던 곳이었는데. 그걸 기억하는구나 싶어 기특하고 신기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집에는 강아지를 위해 주문해 둔 수제 간식들이 냉동실 한켠을 채우고 있었고, 병이 심해지며 심장만큼 신장도 조심해야 하는지라 고단백 식품인 간은 되도록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만 가자 하네스 끈을 당겼다. 하지만 고집 센 내 강아지는 분식집 유리문 앞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고, 배달 콜을 받은 오토바이가 분식집 근처에 잠시 멈춰 서면 용맹하게 왈왈 꾸짖고는 다시 문틈 사이로 코를 박으며 순대를 향한 자신의 요구를 열성적으로 표현했다.
유리문 뒤의 직원분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강아지의 뒤통수와 한참을 씨름한 끝에 결국 먼저 항복선언을 한 건 이번에도 나였다. 돈도 안 벌어오면서! 투덜거리던 것도 잠시, 분식집에 들어가 순대를 주문하는 동안 너무나도 얌전히 품에 안겨 주방 한켠에서 능숙하게 순대를 썰어주시는 직원분을 바라보는 강아지의 뒤통수에 함박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은 수월했다. 손에 들린 분식집 봉지를 연신 올려다 보며 더 빨리 걷지 않는다 독촉하는 강아지를 따라 걷다 보니 금세 집에 도착. 손을 닦고 산책에 쓴 물건들을 정리하는 동안 싱크대에 올려 둔 순대가 담긴 비닐봉지를 빤-히 쳐다보는 강아지의 눈길에 괜스레 마음에 바빠졌다.
개중 얇게 썰린 간을 찾아 잘게 자르며 곧 자신에게 주어질 포상을 기대하는 강아지의 영민한 눈동자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듬성듬성한 털, 척추 뼈가 고스란히 만져지는 등, 자꾸만 비틀거리는 몸. 나날이 약해지고 작아지는 중이지만 이토록 총명한, 내 손톱보다도 작은 간 한 덩이를 뾰족한 주둥이 앞으로 대령하면 헙- 헙- 맹렬한 기세로 식사를 하는 씩씩하고 용감한 내 강아지.
문득 한번씩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지만, 여전히 이렇게 기특하고 꾀많은 강아지라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아직은 꽤 많이 남아있다고 마음을 놓아도 되는 게 아닐까-, 나도 모르게 떠오른 희망이 서서히 가슴을 채운다.
얼마 전에는 고구마 냄새가 풍기는 집 앞에 한참을 서있다 기어코 편의점 군고구마와 함께 돌아온 내 강아지. 우리가 함께 하는 하루가 하루씩 더 늘어가길 바라는 희망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이 정정한 강아지에게 부디 헛된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2025년 8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