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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Jan 06. 2023

하이브리드 오리

하천 길을 걷다가 갑자기 푸드득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백로가 날아오르고 그 뒤를 서너 마리의 오리가 날아올랐다. '이렇게 생겼지만 해치지 않는단다.' 백로는 기다란 날개를 펴고 높이 올라서는 마치 자연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의 영역으로 건너가듯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리는 십여 미터쯤 뒤따라 날다 곧 착지했다.     

   

봄이 온 걸 알았는지 오리가 제법 많이 나와 있다. 무리 지어 하천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다가 먹이를 감지하면 물속에 머리를 박는다. 꼭 내가 머리를 수그리고 핸드폰 할 때와 비슷한 모양새다. 먹잇감을 향해 박력 있게 부리를 박았지만, 엉덩이가 무거워 뒤가 들린다. 머리부터 거꾸로 처박힐 듯 발버둥 치다가 소득 없이 힘겹게 고개를 든다. 힘이 많이 빠진 것 같은데도 짧은 다리로 쉼 없이 물장구를 친다. 한참을 그러다 지쳤는지 뭍으로 올라와 아무것도 없는 마른 짚더미를 쿡쿡 쑤셔본다.       


또 다른 백로는 물 위를 사뿐사뿐 걷다 하얀 날개를 우아하게 편 후 날아올라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하천에서 가장 높이 솟은 소나무 꼭대기에 앉았다. 샛초록 소나무에 내려앉은 흰 백로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오리는 또 얼마나 부러웠을까.           


우아하게 날아올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었다. 길고 가느다란 다리로 사뿐사뿐 걷는 눈부신 백로. 큼직하고 널찍한 날개를 장착하고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백로. 나를  백로라 생각했고 누군가 오리로 볼까 봐 두려웠다. 백로를 따라 날아올랐지만 얼마 못 가 추락한 오리처럼, 성공한 누군가를 따라 열심히 노력하면 되겠거니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되고자 했지만, 왜 원하는지, 어떤 선생이 되고자 하는지, 꼭 이거야만 하는지  답을 찾지 못했다. 워라밸 외에 명확한 청사진을 그릴 수 없던 꿈은 동력을 상실했고 임용고시는  번번히 떨어졌다.  결국 학원에 취업했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한 계단 올라가 단상에 서면 모두가 우러르는 것 같고, ‘선생님’이라 부를 때마다 마음속 허기가 채워지는 것 같았다. 마흔이 넘어 강사에 도전한 것도 뭔가 있어 보이고 주목받는 직업이라는 점에 끌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허세를 뒤집어쓰고 평생을 증명하기 위해 산 것 같다.     


오리가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열심히 날갯짓 한 건 백로를 흉내 내려한 것이었을까. 평생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하고 부러워하고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칭찬을 독차지하고 부모조차 어려워하던 날씬하고 똑 부러진 언니처럼. 잘나가는 프로 강사의 동영상을 매일 보며 멘트를 외우고 표정을 익히고 연습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있듯, 꽉 조여 불편한 옷을 입고 나를 벗어내기 위해 버둥거렸다.   

    

이곳은 양 끝이 막혀 흐르지 않는 하천이다. 여름엔 녹조가 심해서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혼탁해진다. 언젠가 창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새가 비둘기구나 싶었다가, 눈 비비고 다시 봤을 때 오리이길 바란다. 멋지게 비상하지 않아도 괜찮다. 백로는 되지 못해도, 물에서도 땅에서도 살고 가끔은 날기도 하는 하이브리드 오리는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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