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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Feb 06. 2023

1월을 보내며

좋은 날엔 왠지 글을 안 쓰게 된다.


연초, 새가 날갯짓을 멈추면 땅으로 떨어져 죽는다는 각오로 목표를 세웠다. 몸이 보내는 이상신호에 더는 미룰 수 없었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내년까지 십 킬로 감량을 목표로 했다. 트랙을 도는 걷기 운동은 언제든 그만둘 수 있지만 목적지를 정해두면 힘과 체력이 그곳에 맞춰 세팅될 것이다. 만보 걷기, 라면 안 먹기, 치킨은 한 달에 한번 등 세부계획을 세웠다.


쇼호스트의 말빨만큼이나 유려한 옷맵시, 화려한 조명, 매진임박이라는 워딩에 홀린 듯 카드를 꺼내 결제하는 내가, 종소리에 침을 질질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답게, 인간만이 가진 의지를 발휘해서 자극에 속수무책 반응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핸드폰 일일 사용시간이 열 시간도 넘는다는 알림에 충격을 먹었다. 운용 가능한 내 삶의 절대적 시간도 현저히 줄고 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쇼핑중독 벗어나기도 목표에 추가했다.    

      

되도록 TV는 먹방과 홈쇼핑을 피해서 틀고, 보면서 틈틈이 스쿼트나 팔운동을 했다. 나물 가득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구운 계란을 먹었다. 눈뜨자마자 운동을 나가고 비우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오후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 다시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는 고픈 배를 부여잡고 먹고 싶은 걸 참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친구와 함께한 여행에서도 싸 간 계란으로 저녁을 먹었다. 진척이 있겠지 기대하며 체중계에 오른 날,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숫자에 좌절하고 점점 다이어트에 집착하고 음식의 노예가 되었다. 몸무게라는 숫자에 방점이 찍히자 주객이 전도되어 애초 목표였'건강한 다이어트'에서 건강은 삭제되오로지 다이어트를 위해 사는 것 같이, 살고 있다.  이거 소용도 없는데 해서 뭐 하나.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고 깊은 늪속에 빠지듯 무의미함이 밀려들었다.     


어젯밤 꿈에 나는 수지였다. 예쁜 나를 좋아했다. 탤런트 이기우의 얼굴을 한 정의의 화신 같은 남자와 밤마다 술을 마셨지만 생각이 달라 별로 즐겁지 않았다. 아주 큰 배에 많은 사람올랐고 웅장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엔 타이타닉처럼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가라앉아 바닷속에 수장됐다. 모두가 죽을 거라는 걸 알았고 조용해졌다. 누가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순리인 듯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이며 진짜 원하는 삶이었나를 생각했다. 허무와 바닷물이 삽시간에 모두를 덮쳤다.    

      

초심은 한 달을 못 갔고, 참을성은 바닥이 났다. 성과도 안 보이고 실망과 짜증이 치밀어 다 포기하고 다시 파블로프의 개처럼 살고 다. 그래도 아직 연초다. 허무를 핑계로 목표에서 멀어지거목표가 잘 못 됐을 거라는 의심도 거두고, 끝까지 하자. 나에게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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