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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Mar 21. 2023

상처 내지 않기

보이지 않는 상처가 더 아프다

첫직장, 그 눈부신 청춘에 시작되어 인생 역경을 함께 겪으며 점점 굳건해진 우정이었다. 친구가 일을 관두고 가까이 이사 오면서 자주 만나 좋았다. 서로의 집에 놀러 가거나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아무 이유 없이 단칼에 만남을 거절했다.


시간이 흘러 ‘가까이 살아 자주 보고 싶었는데 몇 번이나 거절해서 서운했다.’고 속마음을 얘기했다. 공감할 줄 알았던 친구는 정색을 하며 ‘너는 너무 소심해서 대하기가 어렵다. 이 정도면 자주 보는 거고, 부부동반 만남도 남편에게 다 갚아야 할 빚이라 부담스럽다’는 말을 했다. 우리가 한 번 만나면, 남편 친구 모임도 한 번 나가는 것으로 되갚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졸지에 부담을 주고 만남을 구걸하는 입장이 돼버렸다. 대화는 점점 경로를 이탈해서 친구는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오래전에 서운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무기력하다는 핑계로 운동도 하지 않고 배가 아플 때까지 먹는다. 새벽에 깨고 아무 때나 잠을 자며 온몸이 뻐근하다. 불쑥 화가 났다가 다시 냉정해졌다가 이해하려고 온갖 아름다운 생각을 떠올렸지만, 실패했다. 오늘 아침 빨래를 탈탈 털어 널면서도 문득 화가 치밀었다. ‘부담스러워? 뭐 갚아야 할 빚이라고? 지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소리를...’ 자려고 누우면 친구가 했던 말과 차가운 표정이 비수처럼 꽂힌다. 관계가 틀어진 게 내 탓 같아 자책하고 나를 돌보지 않는다.   

   

골똘하게 생각하거나 낮에 해결하지 못한 일들은 꿈에서 생생하게 재연된다. 어젯밤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문전박대당하고 터덜터덜 집에 오는데 짊어진 가방은 너무 무겁고 길은 험했다. 어느덧 길이 암벽으로 변하고 손톱으로 암벽을 긁으며 죽기 살기로 매달리다가 깨어났다. 드라마에 보면 주인공이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하고 분노의 주먹을 날려 거울을 깨거나 손에 든 술잔을 와장창 깨는 장면이 나온다. 꼭 그렇게 베이고 찢겨 피가 흐르는 것만이 상처는 아니다.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더 아프다.     


고작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보면서 나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그들이 쉽게 내뱉는 말, 평가들. 계속 되씹으며 상처에 약을 바르는 대신 소금을 뿌리는 일을 반복했다. 집나간 멘털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고 그동안 오롯이 나를 방치했다. 무시당할까 항상 두려웠지만, 나를 가장 무시한 것도 나였다. 상대의 입장과 심정을 헤아리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가장 친한 친구에게 상처받은 슬픔은 외면했다.    


당신이 만약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고 치자. 친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보다 생기를 잃고 어두워 보인다. 이런저런 걱정과 어려움에 무기력해 보인다면, 또는 살이 쪄서 자신감이 하락했다고 당신에게 토로한다면 비난하고 무시를 할까, 아님 위로를 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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