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본 '나는 솔로'에선 자기소개 즉 직업이 공개된 후 '판도'가 바뀌었다. 첫인상 선택에서0표였던상철이 한의사임을 밝히고몰표를 받아 의자왕이 되어 무려 세 명의 여자와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반대로 첫인상 선택에서 네 표를 쓸어갔던 난초농장주 영철은 혼밥을 먹게 됐다.
'나는 솔로'의 오랜 광팬인 남편이 물었다.
"의사가 그렇게 좋은 직업이야? 근데 난초농장주도 괜찮지 않나? 난초가 비싸잖아."
"음.. 괜찮긴 하지. 근데 남편 생각에 의사는 어떤 장점이 있을 것 같아?"
"일단 머리가 좋겠지."
"그렇지, 그건 기본이지. 그리고 의사가 되려면 집에서 뒷바라지를 정말 잘해 줘야 되거든. 엘리트 코스를 밟으려면 사교육비도 엄청나게 들고. 시댁 빵빵하고, 남편 닮아 2세 머리나장래걱정 없고,죽을 때까지 아니 일할 때까지는 매달 따박따박 큰돈이 들어와. 봐봐. 안정적이지 않은 게 단 하나도 없어. 인기가 많을 수밖에."
라고 얘기하며 굉장히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내가 이 프로를 잘 보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직업이 매력이자 권력이 되는속물근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불편하기 때문이다.
별 볼일 없는,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한, 학생 때의 만남은 순수함이 기저에 깔려있다. 비교할 수 있는 스펙이랄 게 아예 없는 상태라 속물근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강제순수가 깔려있는, '직업'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던 풋사랑이그래서 지금까지도 애틋하다. 연애나 결혼 모두 현실적으로 직업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인품과 가치관 등 사람 자체가 더 중요하지 않느냐며 애써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판도가 바뀌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영화베테랑에서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안긴장면도 황정민이 외친 "이제 판 뒤집혔다~."였다.
이번주 '불타는 트롯맨'에서 신성이 부른 '못 먹어도 GO'는 숨 한 번 쉴 틈 없이 계속 치고 달리는 굉장히 빠른 템포의 노래다. 종반쯤,퍼포먼스인지 생존을 위해서인지숨을몰아 내쉬며 "하악~~~~ 자! 드가자~." 할 때 그 어떤 코미디 프로보다도 재밌고 엔도르핀이 솟구쳐서오랜만에푸하하 크게웃었다. 무대를 마친후,아슬아슬하게 결승에 안착했던 그가 3위로비상했다.
그를 별로 안 좋아했다. 표정은 느끼하고 노래도 늘 비슷비슷 뭔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장점인 동굴저음도 취향에 맞지 않았다. 편견이었다. 사람의 목소리, 창법, 매력이 절대 한 가지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껑충 오른 순위가 발표되는 순간 너무 기뻐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치고 폭풍댓글로 응원했다. 죽기 살기로 도전해서 사람들을 놀래키는 것. 보는 이들도 기존팬심에 국한되지 않고 순수한 열정에 열광하는 것, 순전히 자기의 선택과 노력으로 판을 뒤엎는 것이 오디션 프로의 묘미인 것 같다.
김혜자 선생님은 '내가 배우 일을 하는 걸 직업이라고 부르면 좀 속상하다고, 일이 곧 나'라고 말했다. 연륜의 깊이는 다르겠지만 '나는 솔로'의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지금의 직업이 어릴 적부터 가슴에 품고 꾸준히 노력한 꿈일 수도, 치열하게 만들어간 인생일 수도 있다. 어느 경지에 오르려면 하루의 대부분을 쏟아붓고 모든 생각과 습관을 일에 포커싱 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어떻게 속물근성이라고 가볍게 표현할 수 있을까.
직업엔지금껏 쏟은땀과 노력뿐 아니라 '나 자신'이녹아 있다. 폄하했던 건 좋은 직업을가진 이를 향한 부러움과 열등감이었다. 나도인생의 판도를 바꾸고 싶다. 그러려면내가 정한 한계를 깨야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