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어눌한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충, 음식을 잘 씹지 못하고 말이 잘 안 나와서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뇌경색으로 두 번 쓰러졌고, 작년에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 워낙 관리를 잘하셔서 괜찮다 싶었는데, 얼마 전에 뵀을 때도 다 잘 드시고 건강하셨는데. 출장 간 남편 대신 혼자라도 가봐야 하나 싶지만 간단치가 않다. 일단 수원터미널로 가서 제천으로, 또다시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더군다나 잠깐의 면회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어머니 제가 내려갈게요.' 이런 빈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는다. 다행히 낮에 아주버님이 다녀가셨다고 한다.
마음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머리가 복잡지끈거리고 기분이 지하로 계속 계속 굴러 떨어진다. 시어머니는 남편한텐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남편이 아팠을 때도 시어머니한테 얘기하지 말라고 해서 거짓말을 많이 해야 했다.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답답하다. 나는 대나무숲인가. 이건 내 몫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카페에 가기 위해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킨다. 발에 닿는 마찰감, 시들어가는 꽃과 새롭게 피어난 꽃들, 얼굴에 닿는 바람, 초록의 나뭇잎 지붕, 귀여운 강아지의 하얀 얼굴과 뜀박질에 걸음이 가벼워진다. 라지 사이즈 아이스바닐라라떼를 시켜 먹는다. 왁자지껄함이 음악보다 좋아 일부러 단체 옆에 앉는다. 단체가 빠지면 책을 편다.
집으로 돌아와 예능프로를 크게 틀어놓고 오랜만에 걸레질을 했다. 밀대로 힘줘서 벅벅 밀면 땀이 배어난다. 뽀드득한 장판 감촉에 기분이 좋다.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를 닦았다. 기분이 더 좋아졌다. 커피포트에 볶은 보리를 넣고 보리차를 끓인다. 구수하고 따뜻한 찻물이 온몸의 장기를 훑으며 휘돌아 나간다. 최종병기인 버드와이저와 오렌지, 냉동피자를 꺼낸다.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눈을 빛내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건강루틴은 없어도 행복루틴은 있다. 다운되는 일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업시키는 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