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빵 중독

by 바다숲

소금 빵이라니, 이름부터가 정이 가지 않았다. 딱딱할 것 같고 맨 빵에 소금이 서걱하고 씹힐 것만 같았다. 빵이란 자고로 입에서 살살 녹게 부드럽고 달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리적 장벽 탓이었는지 맛있다고 사온 친구에게 ‘뭔 맛인지 모르겠다. 내 스타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도대체가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빵을 왜 사 먹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 크림치즈를 먹었을 때가 생각난다. 눈처럼 새하얗고 꾸덕한 크림치즈는 혼자 있을 때는 그리 돋보이지 않지만 베이글에 발라먹으면 천상의 음식이 된다. 특별한 날에 크림치즈 바른 베이글을 한 입 가득 먹으면 그만한 호사가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맛들을 하나씩 접하면서 편견은 깨졌고 지금은 소금 빵을 먹기 위해 아침부터 달린다. 음식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면 좋겠다. 더 이상 맛의 세계를 넓히지 않는 것이 뱃살을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다.


여덟 시, 네 시 소금 빵이 나오는 시간이다.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아침부터 출근하는 사람처럼 달려가는 나를 보며 남편은 '빵 중독'이라고 놀려댔다. 백수가 된 후 낮밤이 바뀐 상태에서 잠을 떨치고 일어나는 그 힘든 일을 해내다니 빵을 향한 집념이 정말 대단하다. 어제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세수도 하지 않고 헐레벌떡 뛰어왔는데도 허탕을 쳤다. 그래서 입을 옷도 꺼내 두고 알람도 여러 개 맞추고 잤다. 눈뜨자마자 침대 옆의 운동복을 꿰차 입고 에코 백에 지갑을 챙겨 달려갔다. 이런 정성이면 뭘 해도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아직 시간이 남아서 커피를 시키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일부러 유행하는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구하기 어려운 것을 바라보다 결국 실망하는 게 싫어서였다. 유명한 식당에서 줄 서는 일도, 대형마트 할인행사 때도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도 싫고, 경쟁에 뛰어드는 것도 피하고, 예상 이익도 애초에 포기했다. 그런데 이건 참을 수 없이 맛있다. 차분히 기다리자 했는데도 조바심이 나서 다리를 달달 떨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웃음이 나왔다. 몇 달 만에 일찍 일어난 이유가 중요한 약속이나 일도 아니고 고작 빵이라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지금까지 왜 안 일찍 안 일어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목표 없인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목표 중독, 계획 중독이었다. 커다란 전지에 1년, 한 달, 하루의 공부 계획까지 촘촘하게 그려 넣었다.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학교에 플랜카드가 걸린 선배에게 들은 비법이었다.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했지만, 해야 할 목록은 늘 다음날로 밀렸다. 공부를 접고서는 또다시 10년 후, 20년 후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도 맘대로 안 되는데 까마득한 미래 계획까지 세운 나는 바보인지 천재인지 모르겠다. 너무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보상은 아득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 같다. 가능한 목표와 즉각적인 보상이 있다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루에 하나만 계획하기로 했다. 오늘은 갓 구운 빵만 얻으면 다 이루었다.


정신없이 나오느라 핸드폰 배터리도 없어 멍을 때리면서 기다렸다.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속은 쓰리고 입은 꺼끌거리고 두통이 심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누군가 들어와서는 아직 나오지도 않은 빵 값을 미리 계산하고 헝클어진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옆 테이블에 엎드렸다. 내가 먼저 왔는데 저이가 먼저 가져가면 어쩌지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그 때 좀비처럼 누워 있던 그녀가 벌떡 일어나 차에 다녀오겠다고 나갔고, 곧바로 빵이 나왔다. 내가 일등이라는 환희에 들떠 귀가 잘 안 들릴 지경이었다. 친절한 종업원은 “지금 나온 거 바로 드시면 더 맛있으실 거예요. 그리고 봉지 안에 김이 서릴 테니 집에 가자마자 여세요.” 하고 조언을 덧붙였다. 조언에 따라 가게를 나서자마자 입구를 봉인하던 테이프를 뜯었다. 하나를 꺼내 한입에 거의 절반 가까이를 크게 베어 물었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른 손에는 빵을 뜯어먹으면서 걸었다. 혹시나 바쁜 뉴요커처럼 보이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히죽대며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다 큰 여자가 길에서 빵을 와구와구 먹으며 웃는 게 이상해 보였는지 쳐다봤지만 마냥 행복했다. 은근하게 짭짤하고 고소한 어른의 맛을 탐닉하는 내가 좋다. 어느새 나는 설탕이나 크림이 담뿍 든 달달함이 최고였던 아이에서 눈물 같은 소금 맛을 알게 된 어른아이가 되어 여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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