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부산에 갔을 때였다. 태풍 예보가 있었지만 이미 한 달 전에 잡아 놓은 숙소와 차편을 취소하는 것은 망설여졌다. 돌이켜보면 객기였다. 예의주시한 태풍경로는 정통으로 부산을 향했다.
여행 첫날부터 비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비를 입고 기차역 앞 맛집에 갔다. 만두하나를 먹겠다고 남편은 줄을 서고, 나는 맞은편 벽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커다란 캐리어를 꼭 붙잡고 있었다. 길에서 만두 먹다 찍은 사진을 보면 영락없는 노숙자다. 그때까진 그래도 즐거움이 있었다.
숙소 창문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깨질까 싶어 최대한 창문에서 멀리 떨어졌다. 우당탕탕 소리에 잠 한숨 못 잔 다음날, 태풍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도 숙소에만 있기는 아까워 광안리로 이동했다. 곧바로 우산이 뒤집어졌고 제법 굵은 나뭇가지가 얼굴로 날아왔다. 흠칫 놀라며 피한 후 치마가 완전히 뒤집어져서 얼굴을 덮었다. 나무 아래, 간판 밑을 지날 때마다 심장이 콩닥거렸다.
태풍을 뚫고 도착해서 먹은 낙곱새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곱이 야들야들 입에서 살살 녹고, 매콤한 양념에 김가루를 잔뜩 넣어 딱 맞는 간이었다. 인근의 할리스로 이동해서 성난 파도를 보며, 바닷물이 방파제를 넘어 카페를 덮치는 상상을 했다. 아주 못된 심보지만 카페 밖, 광경이 꽤 재밌었다. 우산이 뒤집어지고 날아다니고, 모자가 떨어지고 비명을 지르면서 달려가는 모습들이 슬로우처럼 지나가고 마치 코믹 시트콤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샹송 BGM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남편과 낄낄대면서 달달하고 따뜻한 커피와 케이크를 먹었다.
이후로 나가지 않았고 호텔 옆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다가 먹으면서 하루를 더 있었다. 2박 3일 동안 한 거라곤 방에서 컵라면 먹은 것과 지지고 볶고 싸운 기억밖에 없다. 남편은 내내 TV만 봤다. 그래서 더 열불이 났다. 우리의 첫 부산여행은 악몽같았다.
이번 주 월요일, 남편이 갑자기 4일간의 휴가가 생겼다고 했다. 오래만에 긴 휴가에 부산에 가기로 하고, 카페에 가서 숙소부터 검색했다. 모텔 같은 데가 십오만 원이 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다행히 무슨 숙박 쿠폰을 받아서 저렴하게 호텔을 예약했다. 버스며 기차며 싹 매진되어 차를 끌고 가기로 했다. 운전을 싫어하고 차 막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남편이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세수만 하고 미리 챙긴 짐을 들고 지체없이 출발했다. 가는 내내 차가 하나도 막히지 않아서 남편이 행복해했다.
도착하자마자 먹고 싶었던 텐동 집에 갔다. 대기가 없어서 또 행복했다. 장어 튀김을 한입 먹고 정말 기절할 뻔했다. 극강의 바삭함과 간장의 짭조름함과 은은한 단맛이 섞여 맛이 입안에서 폭발한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튀기는 걸 옆에서 봤기 때문에 더 맛있었는지, 이걸 먹기 위해 여섯 시간을 달려와서 더 맛있었는지. 잊을 수 없는 첫 입이었다.
요이쿠마
해운대 호텔에 차를 파킹하고 해변 열차 타는 ‘미포 정거장’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이번 여행을 계획한 남편이 길을 헤매길래 지도 보는 방법을 알려줬다. “지금 우리 호텔이 뒤에 있지. 그러면 지도를 이렇게 뒤로 돌려 호텔이 뒤로 가게하고 보면 돼. 이대로 직진하다가 해변길 나오면 좌회전해서 죽 가면 되는 거야.” 자꾸 해야 는다. 그러나 늘지 않아도 내가 잘하니까 상관없다.
해변 열차를 타고 더운 날씨라 중간에 내리지 않고 마지막 정거장인 송정해변에 내렸다. 이곳은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동해바다 같지 않고, 산과 돌이 어우러져 더 다채롭다. 얼핏 제주바다 느낌도 난다. 반짝거리는 햇빛이 바다에 우수수 떨어져 윤슬을 이루었다. 처음 갔던 여수바다에서 반짝임에 눈부셔 저절로 마음에 시가 흘러넘쳤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해변 앞 작은 언덕과 정자에 올라 사진을 찍고 내려와서 '가베원'이라는 카페에 갔다. 해변 중앙의 카페보다 조용하고 분위기도 좋고 커피도 맛있었다.
송정해변
송정 해변열차 정거장
돌아가는 해변 열차에 인파가 몰렸다. 그때부터 피곤이 몰려들어 속이 계속 울렁거렸다. 숙소에 들어간 후, 남편은 부산에 오면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며 나가서 밀면과 만두를 포장해 왔다. 5분 거린데도 이미 떡이 되어 있었다. 둘 다 한입씩 먹고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망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네~'하고 말했고, 남편은 자기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고 단호한 의사표현을 했다. 솔직히 생각했던 맛은 아니었다.
호텔은 밤새 적정온도가 유지되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아주 쾌적했다. 아침에 호텔 앞 해운대 거리에서 꽃 사진을 찍고 바닷가에서 점프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여행 둘째 날 이런 컨디션을 유지하는 거는 쉽지 않다. 아, 역시 호텔이 최고다.
밥을 먹고 기장에 위치한 유명 카페에 갔다. 유럽, 동남아 외국 그 어디를 간다 해도 이렇게 멋스러운 카페는 없을 것이다. 루프탑이 있고, 바다를 접한 널따란 야외에는 계단마다 설치해 놓은 푹신한 매트와 일인용 소파, 벤치가 있어 편안했다. 천장에 그늘막 역할을 하는 발을 쳐놔서 햇빛은 막아주고 바람은 선선한데, 그 앞에 펼쳐지는 바다 풍경이 기가 막혔다.
웨이브온 카페
“와! 여기는 천국인가요?”
부산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이번에 알았다. 평생 손꼽을 최고의 뷰였다. 남편은 그 카페가 부산 여행을 통틀어 가장 좋았다고 한다. 명당자리에 벌렁 누워 하늘도 보고 바다도 보고 편안했다. 누워서 사진을 찍는데, 나는 쥐 또는 개미핥기 같은 표정을 지어 남편에게 얼굴을 몰아주었다.
카페에서 나와 광안리의 횟집으로 갔다. 예약 필요 없이 자리는 많았고 인당 육만 원짜리 회를 먹었다. ‘바닷가에 왔으면 회 정도는 먹어줘야지.’하는 허세가 있었는데, 우리에게 회는 정말 맞지 않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뒷 건물에 걸린 현수막 속 손석구만 좋았다.
광안리 횟집
밤문화를 즐기고 싶단 남편의 성화에 숙소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캔맥주와 새우깡을 사들고 해안가 계단에 자리 잡았다. 가까이에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거리의 예술가가 있고 노래 버스킹을 하는 청년도 있었다. 광안대교 뒤로 노랗고 둥그런 뭔가가 보였다.
“저게 그림이야? 사진이야? 근데 저렇게 큰 사진을 허공에 띄울 수가 있나?”
자세히 보니 동그랗고 노란 원은 아주 조금씩 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맞다. 저거 열기구다! 저거 1박 2일에 나왔던 사람태우고 올라가는 열기구야.”하고 말했다. 남편도 “그래 열기구 같다. 설마 달이 저렇게 크겠어?”라고 했다.
지금껏 시흥에서 봤던 달은 하얗고 작았다. 때문에 달이 아닐 거라고 편협한생각을 했다. 열기구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어느 순간 광안대교 위로 둥실 떠올랐다. 그제야
“와~저게 달이라고? 남쪽이라 그런가. 왜 이렇게 커~.”
끝까지 의심한 나도 참 웃기다. 물 위를 유유히 지나는 유람선과 갯배에서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불꽃을 떠트린다. 맥주를 마시고 가짜 같던 달과 그림 같은 야경을 눈에 담은 순간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앞으로도 남편과 안 좋은 기억이 있던 여행지를 다시 찾아 트라우마를 극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