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 천안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by 바다숲

‘여행 다녀올게’ 문자를 남기고 천안으로 출발했다. 가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날을 떠올렸다. 공항에서 자리를 두고 외국인과 시비가 붙었는데, 남편은 멀찍이서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캐리어 하나 달랑 챙겨 들고 집을 나왔다. 비까지 내리는데도 캐리어를 질질 끌고 모텔을 찾아 헤맸다. 그때 택시를 잡아 본가로 갔다면 어땠을까.

다음날, 문을 열자마자 끊었다던 담배연기가 집안을 매캐하게 채웠다.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오열하며 사과를 하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싸운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현관부터 무릎을 꿇고 들어왔다. ‘그래, 이 나이에 무슨 얼어 죽을 이혼이냐’ 하며 법륜스님 영상만 틀어놓았다. 어느 날부턴가 남편은 사과하지 않았고, 공교롭게도 내가 돈을 벌지 않는 상황과 맞물려 자존심이 상했다.

막상 떠나려 하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되도록 가볍게 짐을 챙기고 결혼 후 가장 긴 여행을 떠났다. 뚜벅이로 다니며 아직 체력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십 대보다 좋아진 것 같다. 그때는 몸이 아파도 불린 라면죽을 먹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동 중에 핸드폰으로 숙소를 예약했고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해서 힘들어도 꼭 찾아갔다. 나의 컨디션을 챙기며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니 하나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해방감이 들었다.


천호지

천호지를 걷고, 버스를 타고 병천순대골목으로 가서 순대를 먹었다. 돈을 더 내라고 해도 기쁘게 카드를 내밀 맛이었다.


청화집


유관순 기념관


유관순 기념관 근처 꽃이 만발한 카페로 들어섰다. 강아지 두 마리가 나에게 돌진했고 이어서 사장님이 일어섰다.


사장님은 나중에 캠핑카를 사서 강아지들과 전국을 누비고 크루즈로 유럽여행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옆에서 공부하던 청년도 자연스럽게 대화에 합류했다. 내가 나이도 있고 돈이 되지 않는 것에 돈을 쓸 수 없어 대학원을 포기했다고 하자, 청년이 고개를 저었다.

“늦지 않았어요. 교환학생으로 갔던 네덜란드 학교 교정에 보면 오십 대 분들이 많이 돌아다녀요. 처음엔 교수님인가 했는데, 학생이더라고요.”

처음 본 친구가 용기를 주다니. 전공을 바꿔서 다시 네덜란드로 갈 거라고 말하는데, 눈이 반짝거렸다. 내 눈도 그렇게 반짝였을까. 향긋한 커피잔 뒤로 노을의 장관이 펼쳐져, 이미 셋이 함께 로마행 크루즈에 탄 것 같았다.



벚꽃이 절정이다.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을 보면, 이제는 얼마나 이른 시간에 나와야 저걸 다 치울까 싶어 마음이 쓰인다. 어제 떨군 꽃잎은 이미 싹 치워져 있다. 단 1분 전이라도 과거는 치워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전철에서 등 뒤로 보이는 풍경이 더 좋아 보여 맞은편 자리로 옮겼다. 좀 지나자 다시 앞이 황량해지고 등 뒤에 벚꽃이 폈다. 항상 지나온 길이 더 아름답고, 흘러간 강물이 더 반짝인 거 같았다. 이번엔 옮기지 말고 버텨봐야지.



keyword
이전 12화다시 쓰는 화양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