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윤희와 미영은 베프였고, 둘이 노는 게 재밌어 보여 합류했다. 하교 후 도서관으로 향하는 내내 메들리로 노래를 불렀다. 단어를 무조건 똥으로 바꿨는데, 예를 들면 '뽕 따러 가세'를 '똥 싸러 가세'로 바꿔 부르는 식이었다. 유치 찬란하지만 크게 합창하면 또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미영인 이성에 관심이 많아 도서관 큰 나무 아래서 끊임없이 야설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누가 들을세라 주위를 경계하며 턱을 괴고 경청했다.
비슷한 형편이지만 그나마 정기적으로 용돈 받는 윤희가 자주 선심을 썼다. 도서관 자판기에서 백원하던 탄산음료를 뽑아 돌리면 톡 쏘는 우정의 맛에 행복이 차올랐다.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렇게 큰돈을 쓰고 그러냐."
"아니야~넣어둬~~ 별 것도 아닌데 뭐~."
시침 뚝 떼고 손사래 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윤희는 지금도 만나면 화장실 가는 척하고 계산을 한다.
여중 앞 단골인 바바리맨이 자전거를 타고 출몰했다.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지 '이거 봐라~~~.'크게 소리 지르며 오른손을 주먹 쥐고 성화봉송하듯 높이 쳐들었다.
하교시간이라 아이들이 우르르 정문에 몰려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미영인 아이들을 헤치며 가서 보려고 했지만 키가 작아 쉽지 않았다.
"아~벌써 갔어?"
하고 아쉬운 한숨을 내쉬곤 했다.
여느 때처럼 도서관 가는 주택가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젊은 바바리맨이 저만치 앞 쪽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바바리를 젖혔다. 셋 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뚫어지게 쳐다봤다.
"저거 그거 맞지?"
"아닌 거 같은데? 좀 이상한데. 뭐 저렇게 생겼냐?"
"거시기, 그거 맞다니까."
좀처럼 회의가 끝나지 않자, 시무룩한 얼굴로 앞섶을 여미더니 반대방향으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웃어댔다.
텐션이 워낙 높아 도서관에서 경계대상 1호였다. 자주 혼내던 사서에게 미친 눈깔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미영이가 안경을 코 끝까지 내리고 빨개진 얼굴로 눈을 부라리며 미친 눈깔 흉내를 내면, 순찰 돌던 사서가 한걸음에 달려와 방금 미영이가 재현한 모습 그대로 혼을 냈다. 우리는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소리 죽여 웃었다.
자취하며 늘상 라면과 배달음식만 먹을 때였다. 미영이가 일주일간 올라와서 매일 새로운 요리를 레시피를 알려주며 만들어줬다. 닭볶음탕, 비빔국수, 오징어볶음, 갈비찜, 그리고 오래 두고 먹을 양파와 마늘장아찌를 담가주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살림을 도맡더니 솜씨가 여느 셰프 못지않았다. 얼마 전, 엄마처럼 자기도 일찍 죽을 것 같다며 서럽게 우는 미영일 내 아이 품듯 안아주었다.
부산 여행 이후로 삼 년만인가. '우리 돈 아끼지 말고 막 쓰자.' 하며 한껏 신이 나서 목포로 갔다. 비싼 호텔을 잡았는데, 2인실이라 추가 인원은 현장결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차례가 되자, 갑자기 웬 취객이 난입했다. 무인편의점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웠던지 캔맥주를 한 아름 안아 들고 카운터 직원에게 돈을 던지며 '아 몰라. 알아서 결제 좀 해줘.'하고 말했다. 직원은 난감해하며 결제하러 같이 가겠다고 말하고 빠르게 체크인을 해주었다. 추가 금액을 문의하려는데, 미영이가 내 팔을 꾸욱 눌러 잡았다. 뒤를 보니 어느새 윤희는 기둥 뒤에 딱 붙어 스스로 엄폐하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까지 수다를 떨다 잠깐 까무룩 잠들었는데, 일곱 시에 미영이가 흔들어 깨웠다. 조식을 먹으러 가자는 것이었다.
"좀 더 자고 먹으면 안 돼?"
미영이는
"야! 나도 이천구백원이면 더 잤지. 이만구천원이잖아. 두 시간은 먹어야 한다고."
하도 배가 불러 점심도 못 먹고 헤어졌다.
온통 사랑이던 인생의 메인 테마를 이제 바꾸고 싶다. 꽃도 한 순간 최선을 다한 후 땅으로 떨어진다. 눈부시게 피웠던 사랑도 시절인연으로 가슴에 묻는다. 이들이 있어 불행했던 청춘을 견딜 수 있었다. 벚꽃처럼 매년 돌아올 나의, 우리의 화양연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