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더 활달했던 나와 더 내성적이었던 친구는 중학교 때 처음 만났다. 아마도 한 두 마디 나눈 대화가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상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서로 집안의 대소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힘든 일이 생기면 같이 아파했고 가족보다 더 돈독했다. 친구가 집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 부부동반으로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친구는 아무 이유도 대지 않고 단칼에 만남을 거절했다.
한참 후에 만나 천안으로 여행을 갔다. 순대골목, 독립기념관, 단대호수 등에 가서 언제나 그렇듯 수다 떨며 거닐다가 카페에서 마주보았다. 그동안 거절당해 서운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친구는 너는 너무 소심해서 대하기가 어렵다며 정색을 했다. 말인즉슨, 자기는 내성적이라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가 자꾸 보자고 해서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또, 부부동반으로 만나면, 남편 친구들 모임에도 한 번 나가는 것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데, 이번에 남편 친구 모임에 나가서 상당한 금액을 계산했다고 한다. 함께 행복했던 시간을 친구는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했다.
졸지에 부담을 주고 만남을 구걸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친구는 그 때부터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오래 전 서운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얘길 안 해서 그렇지. 나도 서운한 거 많았어. 왜 예전에 나 질투한 적 있었잖아. 기억나? 그리고 네 남편도 결혼 직전에야 보여줬었지? 또, 매너라고는 쥐뿔도 없는 이상한 남자들만 소개해줬잖아. 내가 지금 결혼을 잘해서 다행이지. 안 그럼 너 계속 원망 했을 거야.”
함께 한 지 25년만에 처음으로 깊은 우물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따지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연신 죄인처럼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다 돌아왔다. 친구와 함께 강릉, 여수, 경주에 놀러갔던 오래전 사진을 찾아보았다. 다정한 웃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행복한 시간을 담은 액자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가 곧 바닥에 떨어져 사정없이 깨져 나뒹굴었다.
이후로 무기력하다는 핑계로 운동도 하지 않고 배가 찢어질 때까지 먹었다. 이해하고 잊으려고 하다가도, 이내 속상한 마음이 올라왔다. 오늘 아침에도 빨래를 탁탁 털어 널다가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 갚아야 할 빚? 부담스러워? 지가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친구가 대체 왜 그랬을까 싶다가도, 결국 이게 다 예민하고 소심한 내 탓인 것만 같아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친구한테 전화해 따질 수는 없었다. 나만 아무렇지 않게 넘기면 될 일을 괜히 크게 만들어 다투고 영영 잃을까 두려웠다. 갈 곳 잃은 배신감과 분노의 화살은 자연스레 나를 향했고, 배가 아플 때까지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거나 몽롱하고 무기력하게 몇 달을 보냈다.
대학 동기 중에 대머리 오빠가 있었다. 한 번은 오빠와 동갑인 해병대를 전역한 남자 선배가 짓궂게 놀려댔다.
“너, 나보다 형인 줄 알았다. 머리털이 없으니 겨울에 엄청 춥지?” 오빠는,
“괜찮아. 난 머리숱이 없지만, 넌 머리에 든 게 없잖아.”하고 웃으며 받아쳤다. 기립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오빠에게 큰 실수를 했고, 내가 계속 괴로워하는 걸 보고 오빠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오빠가 친구들과 서울에 처음 놀러가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타지 사람인 걸 알고 금방 갈 길을 빙빙 돌았다고 했다. 눈치 채고 따지자 도리어 심하게 욕설을 퍼붓기에 택시가 잠깐 신호에 걸렸을 때, 양쪽 문을 열고 전부 튀었단다. 저녁에 술집에서 그 일을 안주삼아 다들 신나게 웃고 떠드는데, 한 친구만 몇 시간째 인상을 쓰고 말 한 마디 없더니만, 갑자기 화를 내며 택시기사 욕을 하더라는 것이다.
오빠가 나에게 말했다.
“네가 꼭 그놈 같아. 다 내렸는데 몇 시간 째, 아직도 택시에 타고 있는 그놈 말이야.”
여전히 나는 택시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시시때때로 친구와 다툰 일을 골똘히 생각하며 자책하고 상처를 헤집었다. 아직도 천안의 커피숍에 마주 앉아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연신 사과하고 있다. 이제 단호하게 일어나 저 문을 박차고 나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