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만 가면 돼지가 된다.

by 바다숲

대전 언니네서 하는 가족모임에 갔다. 언니는 해물탕을 끓이고 해물찜을 배달시키고 전을 부치고 소고기를 구워주었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줘서 배 터지게 먹었다.

소화도 시킬 겸 대전서 최근에 생긴 백화점에 구경을 갔다. 엑스포 옆에 위치해 있는데, 1993년, 초등학교 때부터 줄기차게 소풍 갔던 바로 그곳이다. 엑스포가 끝나고 그 드넓은 공간과 첨단미래형 건물들은 죄다 쓸모가 없어졌다. 버려진 땅처럼 주변 아파트 시세도 타 지역에 비해 낮았다. 그런데 백화점이 고급스럽게 지어지고, 옆에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은 고층 호텔이 들어선 후 집값이 들썩인다고 한다.


집 근처 아울렛이나 시내의 백화점 정도를 생각했다. 언니가 머리가 풀렸다며 다시 고데기를 하고 풀 메이크업에 조직보스처럼 차려입을 때만 해도 몰랐다. 특이한 무늬의 블랙 재킷에 명품백을 들 때만 해도 왜 저렇게 유난스럽지, 생각했다. 나는 양껏 먹어 불뚝 나온 뱃살을 그러모아 청바지 안에 힘겹게 넣고는 있는 힘껏 바지춤을 추켜올렸다. 밑단을 잘라낸 후 가위와 칼을 이용해서 어설프게 긁어낸 바지와 오래 신은 운동화를 질질 끌고 나섰다.


백화점 앞에 내리자 아차 싶었다. 가다마이라도 입고 올걸. 신발이 너무 더럽고 바지 밑단이 너저분한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정문에서 사진을 찍자 해서 포즈를 신나게 취하고, 들어가서도 거대하고 멋들어진 말(?) 조형물 앞에서 과하게 웃으며 즐기는 척했다. 자꾸만 배에 시선이 가고 씁쓸해졌지만 표정을 뒤로 감췄다. 매장 앞에서 나눠주는 향내 나는 종이도 왠지 나만 건너뛰는 것 같았다.


야심한 밤, 집에 도착해서 갖가지 듣도 보도 못한 화려한 안주를 보고 이성을 잃고 진탕 먹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비싼 뷔페에 가서 본전 생각 안 나게 또 야무지게 먹었다. 한밭 수목원에 가서 언니더러 화보 찍냐는 칭찬을 투척하며 질투 따윈 전혀 없다는 듯 웃어댔다.


집으로 돌아온 월요일, 저녁 외식을 하려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남편에게 식당으로 바로 오라고 했다. 앉아있는 남편을 보고 그 앞에 앉으려는데 남편이 깜짝 놀랐다.

"대전에서는 되게 통통했는데 집에 오니까 살이 쪽 빠졌네. 하루 만에 진짜 신기하다. 왜 와이프는 대전만 가면 살쪄 있지?"

"글쎄. 대전 가면 맛있는 게 많아서 그런가?"

그랬더니 남편이

"아니야. 그전까지는 야식도 안 먹고 잘 관리하다가, 꼭 가기 며칠 전부터 폭주하고 가서도 엄청 먹고 그러더라고. 갔다 오면 홀쭉해지고. 작년에도 다 같이 찍은 사진 보면 평소보다 뚱뚱하게 나왔잖아."

작년, 펑퍼짐한 블라우스를 롱치마 위로 죄다 빼내고 선글라스를 끼고 저팔계처럼 웃던 사진이 떠올랐다.


맞다. 며칠 전 사진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왜 그러지? 내가 왜 그럴까? 이상하다.


임용 공부 때, 나와 달리 꼼꼼히 계획표를 짜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고 머리도 좋은 언니와 함께 다녔다. 어렵게 한 달 등록한 학원에서 쳤던 모의고사 점수도 심하게 비교가 되었다. 어차피 나는 안 되겠다며 최선을 다해도 부족할 시간에 좌절감에 나뒹굴었다. 지금도 '아무리 꾸며도 언니만큼 안된다.'라는 생각에 자포자기 하는 거다.


왜 질 것 같으면 미리 져버리지. 사실 싸워 이길 필요도 없는데. 최선을 다해 꾸미고 갔는데 "꾸며봤자 언니보다 못하네." 꼭 누가 그런 얘기라도 꺼낼 것처럼 불안해하면서 평소보다 2만 프로 더 거지같이 하고 간다. 똑똑한 첫째가 의사나 교수가 되면, 둘째는 아예 학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영역, 이를테면 예술가나 장사꾼의 길로 간다는 얘길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안전하게 비교 불가능한 영역으로 건너가 버리는 것이다.


평소에는 제법 관리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다가도 가족들 만날 때면 항상 과식하고 불뚝 나온 배를 뚜드렸다. 물론 차려준 성의가 있으니 최선을 다해 먹는 것도, 지금 아니면 언제 먹겠냐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식사 중 대화의 웃음버튼(나를 제외한)은 늘 나의 식탐이었다. 어릴 때, 내 과자를 다 먹고 입 짧은 언니에게 " 한입만~한 개만~"하며 과자 달라고 조른 이야기. 조금이라도 더 얻어먹기 위해 귀찮은 심부름을 죄다 도맡아 한 이야기. 나는 좀 슬픈데, 시원하게 웃을 수 없는 얘기인데, 엄마와 언니는 30년째 노상 같은 얘길 하며 깔깔댄다. 엄마는 살 좀 빼라, 언니는 살 빼지 않을 거면 피부 관리라도 좀 해라, 볼 때마다 잔소리다. 나의 이미지는 식은 돼지기름처럼 가족들 머릿속에 굳어져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지적, 비판, 낮은 기대를 들은 경우, 그 예언을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 '너는 나약하다, 소심하다, 이 문제를 절대 다루지 못할 거다.'그러면 말대로 될까 두려워 손절하기도 했다. 콧대를 납작하게 누르며 "봐. 네가 틀렸어." 해도 모자란데 말이다. 낙인효과처럼 남들이 규정하고 기대하는 쪽으로 움직이려는 경향성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질 때 지더라도 미리 질 필요는 없다. 축구도 시간이 얼마가 남았든 포기하는 순간 게임이 끝나는 거라고 한다. 포기하지 않는 쪽으로. 무겁게 부딪치는 쪽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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