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서 한 결혼이었다. 남편은 우울했고, 시어머니는지독했던 시집살이의 기억에 갇혀있었다. 그래도 시흥과 천안을 오가며 목이 쉬도록 강의를 한 덕분에 빚도 다 갚고 올해는 오롯이 나를 위한 안식년을 보내겠다고 결심한 찰나, 남편이 덜컥 암에 걸렸다.
자다가 숨이 멈추면서 깨는 밤이 이어지고 부딪힌 데 없이 멍이 들었다. 위장을 누가 움켜잡는 듯쑤시고 복통이 심할때면 나도 암인가 싶어 불안해졌다. 입술을 핥을 때마다 쓰고 비린 맛이 느껴졌다. 파킨슨병을 앓는 시어머니가 받을 충격에 남편의 병을 숨기느라, 주변에서 저마다 쏟아내는 조언들을 받아내느라 진이 다 빠졌다. 나만 결혼과 암이라는 도끼질에 맥없이 얻어맞는 것 같았다. 나는 좀 억울했다.
연애시절 남편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뭐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말만 해요. 언제든지요. 원하는 거 다 하고 사세요."
유독 치킨을 좋아한 나를 위해 본인은 삼겹살을 가장 좋아하면서도 날마다 치킨 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남편을 처음 본 날 말했다.
“얘는 청소 머리가 아예 없고 진짜 집이 돼지우리 저리 가라 하게 더러운데, 정말 괜찮겠나?”
주말이면 살림에 젬병인 나를 도서관에 보내 놓고 집안 구석구석을 헤집어가며 말끔히 청소를 했다. 목을 좌우로 돌리면 많이 아픈가 보다 주물러 주고 과식한 것 같으면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꾹 눌러주었다. 프리랜서 강사를 해보겠다고 여기저기기웃대는 동안 한 마디 불평 없이 외벌이를 자처하고, 본 적도 없는 강의를 참 잘한다고 무작정 칭찬해 주었다.
수술 다음날이었다. 통화 중에 전날 거실에서 잠을 자서 몸이 쑤신다고 말했다.
“괜찮아? 온수매트 안 켜고 잤어? 감기 걸린 거 아니야?”
본인은 어제 수술을 하고 물 한 모금 먹지 못하면서도 내 걱정을 한다.
'남편이 없으면 누가 내 잠자리를 걱정해주지.'
눈가가 뜨뜻해졌다.
병원에 있는 동안, 재활용 쓰레기 한 번을 버려본 적이 없어 애를 먹었다. 경비아저씨한테 꾸지람을 듣고 기가 죽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남편이 버려줘서 잘 몰랐어요..."
"아 그럼 계속 남편한테 버리라고 해요~~."
늘 장을 봐주던 남편 대신 겨우 계란 한 판 들고 걸어오는데 팔이 떨어질 듯 아파서 버리고 오고 싶었다. 아주 작은 일조차 할 수 없는 어린아이가 돼버린 것 같았다.
의지하고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살면서 누굴 위해 희생해 본 적 없어 억울하단 생각이 든 거였다.
결혼이라는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 앞에서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때마다 마치 화(火)에 영혼을 팔아버린 사람처럼 굴었다.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명확히 모르면서 그저 모든 게 못마땅했다. 이렇게 좀 해줘라, 너는 왜 남들처럼 못 하냐, 고 밤을 새우며 힘껏 몰아붙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그래서 아픈 것만 같다.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들여다보았다. 머리를 내놓지 않았다면 이불속에 사람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작고 여린 몸집이다. 수술 3개월 만에 이른 복귀를 했다. 하루 종일 불 앞에 쭈그려 앉아 용접을 하는 남편은 가늘게 쪼개진 장작개비 같다. 마른 체격이 수술 후 뼈마디가 하나하나 드러날 정도로 살이 더 빠졌다. 전처럼 요란한 코골이도 않고 가까이 귀를 대야 알 수 있는 옅은 숨소리를 내고 있다.
모탕도 도끼나 톱으로 내려치는 충격이 계속 가해지면, 조금씩 파이고 균열이 생기다가 결국 쓰임을 다하고 불쏘시개로 사라지게 된다.
나의 꿈과 평안을 떠받치기 위해 희생한 그의 삶이 스쳐 간다. 회사에서는 일에, 괴팍한 어머니와 꿈만 좇는 철없는 아내에, 이제는 질병에까지 두들겨 맞는 남편이다. 용광로 앞에서 일하는 남편이 쪼개져 그 안으로 들어가는 상상이 떠올라 잠깐 아찔해진다. 굵고 단단했던 몸이 어느새 파이고 쪼개지며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