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가족여행으로 간 베트남에서 야심차게 던진 질문이었다. 인생의 8할을 먹거나 먹는 것을 생각하고 꿈에서도 먹는 나로선, 서로를 깊이 알아가는 핵심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는 뭐 그런 싱거운 질문이 있냐는 듯 머리를 갸우뚱했다.
“그냥, 오늘은 이게 젤 맛있고, 내일은 또 다른 것이 당기고 그렇지 뭐. 제일 좋아하는 게 어디 있겠니?”
옆에서 언니도 한 마디 거들었다.
“나도 그래. 매일 다르지 뭐. 그럼 너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응. 난 치킨!”
확신에 차서 말하는 나를 보고 언니는 귀엽다는 듯 말했다.
“제부는 좋겠네. 얘가 싼 걸 좋아해서.”
치킨은 결코 ‘싼 것’이라는 말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존재이므로 약간의 분노를 느꼈다. 고개 들어 눈앞을 보니 버터를 발라 숯불에 구운 해산물과 꼬치가 넓은 식탁에 산처럼 쌓여 더 이상 접시를 놓을 공간조차 없었다. 평소 먹고 싶던 음식들인데도 뭐부터 집어 먹어야 할지, 이걸 다 먹을 수는 있을지 대략 난감한 기분이 되었다. 그야말로 끝없는 음식의 향연, 이토록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음식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음식은 순식간에 지난 추억과 열망 속으로 나를 데려다 준다.
어릴 때 종종 시장에서 바로 잡아 튀겨주는 닭을 사 오는 심부름을 했다. 어린 걸음에 돌아오는 길이 꽤 멀기도 했고 후각을 자극하는 기름향의 유혹은 뿌리치기 어려웠다. 금세 굴복하여 다리 하나를 뜯어먹고, 어차피 망했다는 생각에 남은 한 쪽까지 기어이 뜯어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워 버렸다. 혼날까봐 봉지를 내밀며 눈을 질끈 감았지만,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돈을 주며 한 마리 더 사오라고 하셨다. 없는 살림에 늘 화난 것 같은 표정이던 엄마를 일기장에 마귀할멈이라고 쓴 적도 있었는데,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지방대학에 편입한 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두 시간씩 자면서 공부를 했다. 어느 날 큰맘 먹고 시장에서 치킨 반 마리를 샀다. 뛰다시피 집에 도착했는데, 기척을 들은 주인 할머니가 안채로 건너오라고 하셨다. 계량기가 하나니 수도세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소문난 알부자인 할머니는 십 원이라도 손해 볼까 싶어 계산을 반복했다. 방으로 돌아가 꺼낸 치킨은 차갑게 식어 누린내가 나고 씹을 때마다 찌걱찌걱 엉겨 붙는 기름 맛에 비위가 상했다. 마지막 조각까지 억지로 밀어 넣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을 맘 놓고 먹을 만큼만 성공하자 다짐하며 가방을 싸서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일 하지 않는 나의 하루는 알람과 무관하게 일어나 커피를 타며 시작된다. 밥을 먹고 낮잠을 자든지 카페에 갔다가 돌아와 TV를 보다가 아무 때나 잠에 든다. 꿈을 좇아 쉼 없이 내달리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음식만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이번 생애 처음으로 주어진 자유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뜨겁던 열정은 식어버린 치킨처럼 눅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치킨과 함께 떠오른 그 시절은 아프지만 자랑스럽게 피어나 잊었던 열망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오늘은 목욕재계하고 말끔하게 새 옷을 입고 치킨을 마주하겠다. 식을세라 우걱우걱 급하게 밀어 넣지 않고 한 입 한 입 온 정성을 들일 것이다. 시향 하듯 묵직하고도 황홀한 냄새를 깊이 들이마시고, 바사삭 깨물 때의 식감과 입 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맛을 오래도록 음미하며 미소 짓겠다.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뭘 할지 가끔 생각한다.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모이면 좋겠지만 다들 멀리 있고 각자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전화로 마음을 전한 후, 가장 사랑하는 남편과 일몰이 멋들어진 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싶다. 남편에게 마지막이면 뭘 먹겠냐고 물으니, 랍스터와 소고기를 두고 고민하다 결국 뷔페에 가겠다고 답했다. 만약 마지막 식사라면 치킨을 먹겠다. 그동안 고생했다 위로하고 맛있었던 인생에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