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멈추게 하는 순간들

by 바다숲

1. 며칠 전에 산 옷을 종일 찾고 있다.

어떻게 며칠 전에 산 걸 까맣게 잊어버리지. 넣어뒀을 법한 옷장과 서랍을 다 뒤졌다. 잘 둔다고 둔 것 같은데, 아니었나. 아무렇게나 던져두는 의자 위도 아래도 샅샅이 헤집어 봤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다. 당황스럽다.

아무래도 필요 없는 것을 샀나 보다.

김창옥 강사는 ‘사람이 마음이 허하면 물건이 없다고 느끼고 자꾸만 사게 된다.’고 말했다.



2. 날파리같이 조그만 몸집의 벌레가 나왔다.

한 마리를 죽였다. 저기 또 보인다. 계속 죽이다 보니 결국 다섯 마리를 죽였다. 집이 싫어지고 내가 싫어지고 벌레도 불쌍하고 마음이 황폐해진다. 벌레가 나올 지경이라니, 힘이 빠진다.



3. 물을 따라 마셔도 될 것 같은 남편의 쇄골을 본다.

내가 밥을 잘 못해줬구나. 방치했구나.

집을 둘러보고 냉장고를 열어본다. 쌀을 씻고, 쌀뜨물로 된장찌개를 끓인다. 신김치를 살짝 씻어 볶아 두부와 내고, 콩나물을 무치고, 계란을 예쁘게 만다.



4. 누군가 '멋진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 빠르게 주위를 둘러본다. 나밖에 없으니 내게 한 말일 테다. 머리를 굴려 그간의 일을 반추한다. 도저히 모르겠다. '혹시...저의 어떤 면이 멋진가요?' 묻고 싶지만 참는다.

그냥, 이라고 뭉뚱그려도 좋다. 굳이 내게 와서 내 눈을 보고 멋진 사람이라 말해준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다.



5. 저녁을 먹다가 문득 일몰을 바라본다.

맑은 옥색과 짙은 파란색이 뒤섞이다 해주위로 점점 붉게 물들어 타오르는 하늘을 멍하게 본다. 어느새 온통 컴컴해진다. 아름답다는 생각도 잠시, 오늘도 가는구나. 이렇게 1년이 갔구나. 인생도 금방 가겠구나.

나, 잘 살고 있는 건가.



6.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다가.

남들과 반대로 시간을 살다간 벤자민이 일생의 사랑인 데이지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에게 쓴 편지에 이런 말이 있다.

자랑스러운 인생을 살지 못했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문장에 오래 멈춘다. 나는 어떤 인생이었나 생각해본다. 어떤 자세로 늙음과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가. 한 걸음 한 걸음이 자랑스러운가. 80세 노인으로 태어난 벤자민도 매 순간 아름답고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느끼며 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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