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이 학교라 아침에 나가면 오가는 아이들이 많다. 저 멀리서 미친 듯이 내달려 와 피해야 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을 보면 어릴 때가 생각난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친구를 사귀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등교했지만 맞잡은 손을 크게 흔들며 개선장군처럼 돌아왔다.
커서는 다한증 때문에 교회 같은 데서 처음 본 사람과 손을 잡으라고 하면 죽을 맛이었다. 대부분은 싫어했지만 남자친구들은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손을 놓지 않았다. 도리어 왜 오늘은 손에 땀이 나지 않는 거냐, 혹시 사랑이 식은 거냐며 서운해하기도 했다. 황당했지만 그를 위해 손바닥을 열심히 비벼 땀샘을 열곤 했다.
삼십 대 후반이 되자 함부로 쓴 몸이 말썽을 일으켰다. 디스크로 잠시 일을 쉬었을 때, 엄마는 뭔가를 숨기는 듯했고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너는 엄마만 믿어. 너 결혼 잘할 거래. 그리고 돈 달란 얘기는 절대 하지 마. 십 원도 주면 안 된다더라. 그럼 자식이 큰 병 걸리거나 죽는대.”
이상한 교리를 설파했고, 어린 여자한테 엄마라고 불렀다. 알고 보니 사이비에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넘긴 후였다. 왜 자식한테 돈을 주지 말라고 했는지 그제야 알았다. 경찰에 읍소해 보기도 했지만, 다 큰 성인이 자발적으로 갖다바친 것은 죄가 성립되지 않는단다. 집 명의를 넘기자마자 버려진 엄마를 모시고 돌아왔다.
여생을 책임져 주겠노라 한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고 했다. 그들은 엄마의 외로움을 알아채고 친절한 미소로 접근했다. 잦은 방문과 그들이 싸온 음식을 먹으며 엄마는 잠시나마 구원받았다 생각했을 것이다. 애써 괜찮은 척 했지만 밤이면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떨어졌다. 속이 문드러지고 화병이 나서 모든 병증이 일어났다. 속인 놈이 나쁘지 속은 사람은 잘못이 없지만, 원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 손이나 덥석 잡다니.
가진거라곤 집이 전부인 나는, 결혼하면 엄마에게 집을 주고 나와야 했다. 개털이 된 삼십 대 후반의 아픈 여자,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깔끔하고 잔소리가 많은 엄마와 나는 매일 부딪혔다. 고시생일 때 일 년 동안 청소를 안 한 적도 있었다. 집을 잠만 자는 용도로 쓰고 싶기도 했지만 그냥 귀찮았다. 밥 먹고 가라고 하면 아침을 안 먹는 나는 짜증스러웠다. 지금은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보는 게 소원이다.
그때 만난 남편은, 헤어질 때마다 꼭 고기나 케이크를 들려 보냈다. 바보 삼룡이처럼 착해빠져 보였다. 엄마는 남편을 처음 본 날 사이비 사건을 다 털어놓았고, 중요한 질문도 했다.
“얘는 청소 머리가 아예 없고 진짜 집이 돼지우리 저리 가라 하게 더러운데, 정말 괜찮겠나?”
도망가지 않았고 합격목걸이를 받았다.
소설 '테스'에서 ‘들개를 피하려다 늑대소굴에 뛰어들었다’는 묘사가 꼭 내 얘기 같았다. 친구들을 봐도 남편들은 결혼 전 다 연기대상감이다. 그는 약한 체력 탓에 늘 인상을 쓰고 짜증스러웠다. 우울한 기분은 금세 전염되었다. 시댁은 주는 것 없이 과연 시댁이었다. 안 싸운 날보다 싸운 날이 더 많고 이 동네에서 우리 집이 제일 시끄럽다.
손의 온기를 정말 좋아한다. 외로움과 긴장으로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나는 항상 네 편이야.” 속삭이는 듯 접혔던 마음이 펴지고 활력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 힘을 준 사람은 언제든지 다시 뺏을 수도 있다. 누군가로 인해 구원받으면 그로 인해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날이 올 것이다. 힘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손 내민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며칠째 쏟아붓던 비가 그쳐 환해졌다. 눈이 부셔 미간을 찌푸린 채 창문을 여니 반가운 비둘기 소리가 들린다. 비를 피해 잠시 쉬었다면, 일어나 혼자 걸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