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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Jun 28. 2024

이해할 수 있을까

도서관 경력 6개월. 이 정도면 날아다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출근 도서관 운영위원회 방문소식을 들었다. 지저분해 보일 수 있는 각종 안내문을 떼고 물품들을 사물함에 넣었다. 안내문을 붙였던 유리문에는 테이프자국이 남아 지우는 데 대단히 힘들었다. 지우개로 박박 지우고  유리세정제를 뿌려 마른걸레로 닦아도 흔적이 남았다. 문밖에 수두룩한 러브버그를 빗자루로 떼려 잡고 하수구로 쓸어냈다. 여느 때처럼 4시쯤이 되자 소음이 절정에 다다랐다. 0~2세 정도 유아들이 가장 많이 오는 시간대다.


늘 그렇듯 다들 도서관임을 잊었다. 엄마들끼리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아이들과 장난치고 귤 까먹고 놀았다. 마치 만남의 광장인양 서로 모르던 부모들도 비슷한 또래 아기들로 대화의 물꼬를 트며  금세 서로 웃고 떠들며 친해졌다. 아무리 다니며 조용히 해달라 부탁해도 아무 소용없었다. 부모가 케어하지 않는 한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사실 기어 다니는  유아들이 말이든 누구말이든 알아듣기나 하겠는가. 현타가 왔지만 도서관을 시장통 놀이방처럼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돌며 정숙을 부르짖었다.


빼놓은 책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개관 이후 대출됐던 책들도 반납시기를 맞아 정신없이 바쁘고 데스크가 붐볐다. 그때 지역관장님들이 라운딩을 돌았다. 다들 너무 시끄러워서 당황한 얼굴이었다. 라운딩은 금세 마무리됐다.


드디어 마감시간,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 내 책을 후다닥 꽂고 대출을 다 해주고 전등 에어컨 등 기기와 컴퓨터들을 껐다. 이제 문단속하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친구인 듯한 두 엄마와 아이 하나가 마감직전에 기저귀를 갈러 수유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6시 정각에는 화장실을 갔다. 이곳은 독립된 건물이라 화장실로 이어진 문까지 다 닫아야 한다. 기다렸다. 6시가 넘었는데 물을 먹겠다고 정수기 앞에 섰다. 기다렸다.


아이는 갑자기 정수기 종이컵이 맘에 안 들었는지 물이 잘 나오지 않았는지 어쨌는지 종이컵을 꾸기더니 바닥에 배를 깔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옆에서 가만히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있었다. 언제까지 지켜보실 건지. 참다못해 누워있는 아이를 안아 문밖에 내려놓았다. "집에 가자~내일 만나자~."나름 최대한 상냥하게 얘길 했다. 그제야 잠금장치를 거려는데 고장이 났는지 잠기질 않아 도시공사 직원을 부르러 갔다. 정신없는 와중에 사무실 공무원도 오고 공익과 동료선생님도 퇴근하기 위해 다들 문 밖에 서있었다.


그러자 아이엄마의 친구로 보이는 분이 나갔다 다시 안으로 들어와서는 말했다.

"저, 물 좀 먹을게요. 5 정도는 괜찮잖아요. 안 그래요? 왜 물을 못 먹게 해요?"

"선생님, 저쪽에도 정수기 있어요."


그러자 그분은 본격적으로 민원을 걸기 시작했다.

"저쪽에 정수기가 있는지 저는 몰랐잖아요. 그리고 여기 이용연령이 어떻게 되죠? 우리 애들처럼 린애들은  오는 곳이에요? 아니잖아요. 아까도 그래요. 충분히 조용한데~~ 조용히 하라고 계속 그러시고 되게 기분 나빴어요. 저 여기 좋아해서 자주 와요. 저 엄마도 제가 오자고 해서 왔는데  강제로 애를 들어서 옮기고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애엄마가 많이 놀랬잖아요. 그리고 지금 몇 시예요?5분 정도는 괜찮잖아요.  안 그래요? "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들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이런 말을 들으니 문득 힘이 빠졌다. 충분히 조용한데 조용히 시켰다고? 조용하다는 기준이 대체 뭐지? 분은 괜찮지 않냐고? 아니, 전혀 괜찮지 않다!! 시간 반을 집에 가야 하는데 버스 한번 놓치고 나면 30분 더 지체되고 집에 가면 여덟 시가 넘어버린다. 어제도 그제도 마감 이후에 물먹고 화장실 가는 사람들 때문에 늦었다. 내 분도, 우리 직원들의 분도 당신 시간만큼 소중하다. 당신 이거 갑질이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개만 끄덕였다. 정말 나쁘다, 정말 힘들다는 생각과 탈출만이 답이라는 생각이 뇌를 지배했다.


놀이방도 아니고 기어 다니는 갓난아기들이 와서

계속 놀고 소리 지르고... 휴... 나도 짜증이 났나 보다. 아니면 운영위원회  회의가 길어지고 라운딩이 생각보다 늦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내내 정리하고 또 정리하면서 이미 기가 빨려 있었다.  라운딩 중 잠시 파견 갔던 도서관의 관장님이 달려와 두 손을 꼭 잡아주셨다.

"많이 힘들어 보여. 어떡해."

"네 힘들어요."

땀에 번들거리는 얼굴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매일 두통에 시달리고 지쳤고 힘에 부친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아이를 잘 케어해 주시고 조용히 시키는 훌륭한 부모들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일부는 시원한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아기와 웃고 떠들고 힐링하고 싶어 한다. 모두가 행복한 도서관을 꿈꿨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도서관 사서도, 어린이실 담당도 처음이란 말이다. 우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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