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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Oct 08. 2022

그렇다고 치자

엄마에 대한 감정은 철이 들고 나서는 안쓰러움이, 그 전에는 서운함이 더 컸던 것 같다. 엄마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목욕탕 청소를 시작으로 정수기 필터 교환, 보험영업, 가사도우미 등 요즘 흔히 말하는 3~4개의 job을 뛰는 N 잡러였다. 그렇게 대전 바닥의 이쪽과 저쪽을 오가던 엄마의 피곤에 절어 귀가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아빠의 수입은 가계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릴 적엔 작은 문방구를 운영했는데, 그나마도 곧 문을 닫은 후로  엄마의 고단한 삶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식탐이 유독 많던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나를 벤 열 달 동안 폐렴에 걸린 아빠는 그땐 그게 죽을병인 줄 알고 절에서 반년 넘게 머물렀다고. 홀로 둘을 키우던 엄마는 자장면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도 한 그릇 사 먹질 못했다고 했다. 더군다나 내가 태어난 날, 아들로 오인한 친척들이 집에 다 모였다가 나를 보고는 서운한 소릴 내뱉으며 흩어졌단다.


2.7kg로 유달리 작게 태어난 둘째 딸은 팔다리는 말랐는데 배만 볼록 나왔더라고 한다. 소고기 없는 미역국을 드신 엄마는 서러웠고, 작게 태어난 나는 뱃속에서 굶주린 한풀이를 하듯 뭐든지 엄청  먹어댔다고 한다.  식탐의 근원 설화인 셈이다.


그런 엄마에게도  서운함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살 빼라는 말을 많이 했다. 먹을 것을 숨겨두기도 하고 7시 이후엔 아예 냉장고 문을 못 열게 했다. 모두 잠든 후에 몰래 일어나 숨바꼭질하듯 찾아 먹고 냉장고를 털어먹었다.


사실 나는 살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이목구비 유전자가 몰빵 된 식탐 따위 모르는 우아한 언니만 데리고 외출을 했다. 언니에게 향했던 칭찬들이 암묵적인 비난인 것 같아 열등감에 시달렸다. 어떻게 노력해도 아무도 내게는 별 기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밖으로 떠돈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 같음 안 살았다!' 했던 어리고 철없던 언니의 말이 깊은 생채기를 낸 모양이다. 가끔 꿈에서 엄마와 언니가 합세해서 나를 구박할 때면 극도의 분노를 터뜨리며 양손에 둘의 머리채를 잡고 2대 1로 드세게 싸우곤 한다.


욕하는 잠꼬대도 심하게 하는데, 세상 시체처럼 자는 시어머니도 내 욕소리에 벌떡 일어나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어리둥절하신다. 그럴 땐 너무 민망하여 자는 척을 했다.


안 그래도 고단하신데 지난 얘기들로 마음을 어지럽게 해드릴까 싶어 한 번도 얘기를 못 꺼내봤다. 그런데 글쓰기 모임을 통해 부모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어서인지 나도 한 번은 내보이고 싶었다.


어젯밤, 통화로 이런저런 얘기 끝에 슬쩍 본심을 투척했다.

“엄마, 지난번에 갔을 때 나 얼굴 커졌다고 살쪘다고 그랬잖아. 난 지금도 엄마가 언니만 예쁘다고 하면 너무 서운행.”

“아이고, 엄마가 우리 딸을 애정결핍으로 키웠나?”

언니는 어려서부터 예쁘고 날씬하고 똑똑해서 엄마 아빠, 주변 사람들 다 엄청 이뻐하고 칭찬했잖아. 어릴 때 이모, 삼촌들도 언니랑만 놀아주고. 근데 나는 칭찬 한 번도 못 듣고 자라서 그런가 봐.”


엄마는 말했다.

“아니야~너 기억이 이상하다~~ 완전히 왜곡이 됐어~~ 언니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아주 내찼잖아. 아주 옆에 가지도 못하게 차갑게 굴었잖아. 근데 너는 애교도 많고 싹싹하고 그래서 친척들이 다 너를 더 좋아했잖아. 네가 얼마나 귀여웠는데~엄마도 너를 더 좋아했어~~ 너 기억이 완전히 잘 못됐다~~”

“그래?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전화기 너머로도 손사래 치는 모습이 그려져서 웃음이 나왔다. 래~기억의 오류라고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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