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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Dec 07. 2023

새벽마다 나타나는 오줌자국의 진실

요실금 극복기

"약 좀 그만 먹고 싶다. 어휴..."

"그래도 어떻게 해. 나이 들면 다 아프고, 아프면 약을 먹어야지."

"빨리 죽어야지, 이 약은 다 먹어서 뭐하냐"


매일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은 엄마는 먹는 약도 많다. 아침에는 열 몇개의 알약을 한 번에 삼켜야 하니 오죽 질릴까 싶다. 오늘도 그 많은 병원 중 한 곳에 가는 날이었다. 최근들어 증세가 심해져 엄마를 괴롭히고 있는 요실금 진료를 위해 비뇨기과에 예약을 해두었다. 요실금은 사람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몹쓸 질환이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절이 되지 않으니 사회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제약이 많다.


[요실금의 정의]
요실금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소변을 보게 되는 현상으로, 최근 평균 수명이 연장되어 노령층이 증가하면서 그 유병율이 증가하고 있다. 빈도는 남성보다 여성에서 많으며 우리 나라의 여성의 40% 정도가 요실금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실금 원인]
잦은 출산, 난산 등으로 인한 골반 저근의 약화, 신경 손상으로 인한 요도괄약근의 기능 저하, 골반부 수술이나 방사선 조사력, 중추 및 말초 신경계 질환이나 당뇨 합병증에 따른 신경인성 방광, 급만성 요로감염, 일부 약물 등이 요실금을 일으킬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요실금 [urinary incontinence]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엄마가 요실금을 앓고 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병원에 다니며 나름 조절을 잘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자신의 안위와 직접 관련되지 않으면 주변을 잘 살피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적용되는 말이다. 특히 가족에게는 더 무심한게 나의 약점 중 하나이다. 직장에서는 알고 싶지 않아도 직원들의 표정, 말투 등을 보면 그 사람의 상태가 보이고 관심갖고 살피는 편이다. 가족에게는 왜 그리 무심할까? 직장에서, 친구와의 사이에서 살피는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일까? 뭐가 됐든 가족에게 더 무심한게 나다. 엄마의 상태도 마찬가지다. 작년 12월 우리집으로 합가한 이후 혼자 다니시던 병원과 멀어져 약을 먹지 못하고 있었고 점점 조절이 안되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 부시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짜증스러움이 묻어난 남편의 목소리가 방문 밖에서 들려왔다.

"아, 진짜! 네오* 너!!! 쉬 똑바로 못해!!! 패드(대소변을 보는 배변패드)에 싸야지, 복도**에 다 흘려놓으면 어떡해!!!"

*우리 가족의 반려견으로 아래 턱이 짧아 항상 메롱하고 있는 화이트 포메라니안이다.

      **화장실에서 방까지 가는 길목


남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졸린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었다. 화장실부터 엄마방(네오는 엄마방에서 잔다)까지 소변 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자다 잠깐 깨서 화장실 가려다 봉변을 당한 남편이 안쓰러워 함께 치우려고 물티슈를 들고 다가갔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우리 네오는 체중이 2.5kg밖에 나가지 않는 소형견인데 네오가 했다기엔 양이 너무 많았다. 투덜거리는 남편에게 물티슈를 휙 던지고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었다. 아?! 범인을 찾았다!! 문을 살짝 닫고 취조에 들어갔다.

"엄마야? 네오 아니지?"

"뭐가? 나 아닌데? 네오 이놈자식! 쉬 똑바로 안해?!" 라며 네오 엉덩이를 살짝 때리는 시늉을 하는 엄마. 수상쩍다. 아무리 봐도 수상쩍다.

"엄마지? 아~ 솔직히 말해!" 그제야 엄마가 털어놨다.

"나야... 쉿! 준호아빠한테 말하지마! 요즘 요실금이 심해져서 밤에는 자꾸 실수를 하게 되네. 다른 때는 내가 치웠는데, 오늘은 준호아빠가 갑자기 나오는 바람에..." 엄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딸이라도 숨기고 싶은게 있을텐데 굳이 꼬치 꼬치 캐물어 대는 무감한 딸을 둔 엄마의 책임이다.


그 뒤로 몇번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수도세, 전기세 많이 나오니 세탁물은 모아서 일주일에 2번 정도만 하자고 외쳐대는 딸 덕분에 엄마는 실수한 옷가지를 손빨래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떤 날은 귀찮아서 숨겨놓기도 했다. 그럴수록 나의 추궁과 엄마 스스로 처리를 해야한다는 강요는 심해졌다. 참 무심하고, 무감하고, 다정하지 않은 딸이다. 늘 묵묵히 알았다고만 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의 집에 악취가 나는 것이 싫었고, 엄마가 자꾸 실수하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스스로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픈거기 때문에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했다. 치매와 요실금의 만남은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를 힘들게 한다. 요실금 팬티만 10벌을 구입했다. 심지어 3벌은 인터넷에 떠들썩하게 광고하는 제품을 샀다. 1벌에 무려 5만원을 주고... 엄마에게 으스대며 '엄마, 이건 되게 비싼 팬티야. 이거 입으면 걱정없을거야. 밤에도 푹 자~"라고 말했건만, 흡수력이 생각보다 좋지 않아 입지를 않으신다. 과대광고에 속지말자.


결국 대학병원 비뇨기과 진료 예약을 했다. 첫번 째 진료 후 방광 검사가 필요하여 검사일을 예약했다. 정확한 검사를 위해 비뇨기과 검사 전일 관장을 하고, 당일 아침부터 소변을 참고 가야한다. 검사 전까지 3일간 배뇨일지도 작성해야 하는데, 이게 참 거추장스럽다. 소변을 볼 때마다 배뇨컵(아이스 음료를 담는 PET병인데, ml가 표시되어 있다)에 보고 소변양을 기록해야 한다. 소변횟수, 양, 소변실수 등을 A4용지에 빼곡히 들어차있는 표안에 기록해야 한다. 엄마에게 몇 번을 설명했고, 엄마는 잘해보겠다고 했다. 퇴근해서 살펴보면 나름 노력을 하였으나, 제대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내가 봐도 너무 귀찮고 어려운 과정이어서 사실 정확히 작성될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피검사와 요역동학검사가 있으니 배뇨일지 정도야 정확하지 않아도 될거라 생각했다.


비뇨기과 진료 당일은 15시 채혈 후 요역동학 검사, 16:30분 의사 진료이다. 얼마 남지 않은 연차휴가를 냈고, 아이 등교를 챙기던 중 식탁위에 놓여있던 종이가 확대되어 눈에 비춰졌다.

아... 망했다. 관장을 안했다. 관장 좌약은 병원에서 받아온 날부터 아일랜드 식탁위에 곱게 놓여있다. 냉장보관 하랬는데.. 하아.. 소변도 참고 오라고 했는데 엄마에게 전달을 안했다. 배뇨일지도 제대로 작성이 안됐고, 믿고 있었던 요역동학 검사를 위한 준비도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짜증과 좌절감이 올라왔다. 귀한 휴가를 를 내어 어렵게 잡은 검사날인데 내가 다 망쳤다.

  "아! 어떡해!! 아. 진짜!!! 하아..." 식탁 앞에 서서 좌절의 소리를 내뱉는 딸을 지켜보던 엄마가 말했다.

  "미안해. 내가 챙겼어야 하는데.. 내가 요즘 기억력이 안좋아서... 어쩌냐..."

엄마의 잘못은 1도 없다. 기억하지 못한 나의 잘못인데, 엄마가 사과를 하고 있는 상황은 내 머리속을 차갑게 식혀주었다. 상황 수습이 우선이다.

  "엄마가 뭐가 미안해. 내 잘못이지. 우선 병원에 전화해볼게"

 다행히 관장을 하지 않았어도 그냥 오라고 했다. 이때 나는 감기 기운이 있어 몸이 힘들었다. 엄마와 아들의 병원 일정을 챙기고, 일을 하고, 새롭게 시작한 교육을 듣고 과제를 하며 정신없는 시기였다.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모든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거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결국 실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 나의 1차 감정은 걱정이었다. 나의 실수로 엄마가 검사를 받지 못하고, 처방을 받지 못해 불편을 겪고 있는 상황이 해결되지 못할까봐 걱정되는 마음이었다. 2차 감정은 짜증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어떤 일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2차 감정이 자신의 온전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바로 나오는 반응은 진정한 감정과 욕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1차 감정과 2차 감정을 구분해보면 나의 진정한 욕구를 알게되고 행동방식을 바꿀 수 있다. 엄마의 사과는 나의 1차 감정을 인식하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역시 어른은 그냥 어른이 아닌가보다. 이론적 지식이 없어도 진심만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게 어른이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도착하여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비뇨기과 환자들은 대부분 노인이 많았다. 검사는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검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책을 펼쳐들었다. 비뇨의학과 입구 정면 의자에  앉아 있다보니 이자리가 명당이었다. 간호사들의 호출을 듣고 바로 진료실로 들어가기 좋은 자리였다. 지팡이에 의지해 검사를 받으러 간 엄마의 상황을 살피기 딱 좋은 자리다.

비뇨의학과의 명당자리


잠깐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게 감사했다. 잠깐의 휴식에 만족함을 느끼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옆에 앉은 아줌마가 파마 냄새를 풍기며 내 가슴팍으로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안쪽을 보며 자기 순서를 확인하는 모양이다. '그럴 수 있지. 진료 순서를 놓치면 안되니까.' 마음이 넓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아.. 근데, 계속 된다. 내 눈 앞에 5분에 한 번씩 뽀글거리는 파마머리가 파마약 냄새와 함께 들어온다. 책을 들어올려 심리적 안전거리를 확보하기로 했다. '이제 좀 괜찮네. 음? 의자가 왜이러지?' 의자가 마구 흔들린다. 지진인가? 시선을 의자로 돌리는 찰나,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사시나무 떨듯 다리를 떨고 있었다. 습관처럼 아저씨의 허벅지로 다가가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막았다. 허벅지를 꽉 잡고 '다리 떨지마세요~ 복나가요' 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마음이 넓은 나는 생각을 고쳤다. ' 안마의자구나. 엉덩이 안마를 해주시는 아저씨 감사합니다.'  결국 책은 2장도 읽지 못했지만, 주변의 어떤 방해도 괜찮게 느껴졌다. 2시간 전만 해도 안달복달, 죽을 것 같던 마음이 편해져있었다. 엄마는 비뇨기과 약을 처방받았고 부작용없이 잘 복용중이다. 여전히 가끔 실수가 있지만 삶의 질은 많이 나아졌다.

 


삶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다. 아무리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메모하고, 확인하더라도 놓치거나 실수하는 일이 생긴다. 그럴 떄 나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게 필요하다. 1차 감정과 2차 감정을 구분하고 나의 상황을 인식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일도,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제 일희일비 하지 않고, 나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며 나와 타인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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