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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Nov 26. 2023

존재만으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치매가 차별의 이유가 되어선 안 되는 이유


치매진단을 받아서일까, 치매가 진전되고 있어서일까, 그저 나이 들어서일까? 엄마는 점점 자기주장이 옅어지고,  난 몰라를 입에 달고 산다. '기억 안 나'와 '몰라'를 반복하면 슬며시 짜증스러움이 올라온다. 겉으로 보기에 엄마는 1년 전보다 걸음을 잘 못 걷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자꾸 '기억 안 나', '몰라'라고 하면 정말 기억을 못 하는 건지, 못하는 척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초원을 호령하던 패기와 용맹함은 기억 뒤편으로 사라져 버린 걸까, 평생을 살아남기 위해 온몸의 털을 세우고 살아왔던 세월이 힘들어 놓아 버리는 중인 걸까? 호랑이는 정말 기억을 못 하는 걸까? 못하는 척하는 걸까? 이게 왜 중요한 건가를 고민해 봤다. 기억을 못 하는 거면 앞으로 더 나빠질까 봐 걱정된다. 더 나빠진다는 건 나에게 지워지는 책임이 커진다는 이야기이니 그게 부담스러운 것 같다. (효녀는 못되나 보다.) 기억을 못 하는 척하는 거면, 속은 게 억울할 것 같지만 엄마가 여전히 건강하게 옆에 있는 것이니 안심이 될 것 같다. 그러면 나의 역할 비중이 낮아지니 '건강하셔서 안심이에요.'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일 뿐이겠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니, 사실은 '엄마가 치매'라는 사실을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글을 쓸 때 '~같다'라는 표현을 최대한 안 쓰려고 노력하는데, 내 마음임에도 '~ 같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엄마는 성인병도 골고루 갖고 있다. 고지혈증, 당뇨, 요실금, 우울증, 뇌영양제(치매약은 부작용 때문에 현재 처방을 안 해준다.)를 복용하다 보니 약 개수가 꽤 많다. 아침, 저녁으로 먹는 약도 달라서 엄마 스스로 챙겨 먹는 게 어려워졌다.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걱정거리다. 저녁식사 후 옆에 챙겨놓은 약을 먹고 밥그릇을 싱크대에 갖다 놓은 엄마가 뭔가를 한다.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신경을 긁어 고개 들어 보니 약봉지를 뜯고 있다. 

"엄마, 뭐 해?", 

"응 저녁약 먹으려고. 약을 안 먹었어~" 

방금 약 먹은 걸 기억하지 못한다. 걱정은 짜증으로 발산되어 결국 목소리가 커지고, 엄마를 가르치듯이 못할 말을 하고 말았다. 

"아, 제발! 기억 좀 해!!! 기억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생각을 안 하는 거야! 엄마, 방금 약 먹었잖아. 약 먹는 거 기억 못 해서 내가 챙겨주는데 왜 또 엄마가 약을 챙기려고 그래. 그냥 가만있어" 

"아.. 그래, 네가 챙겨주는데 내가 또 이런다. 미안해"

엄마의 아침약

답답한 마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밥을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었다. 목이 메어 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아들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아들의 눈 속에는 두려움과 짜증스러움, 눈치가 섞여 있었다. 

아... 나는 왜 엄마인 나를 자각하지 못했을까. 딸인 나는 나의 엄마와 싸우기도 하고, 짜증도 내는 관계이지만, 아들의 엄마인 나는 아들 앞에서 나의 엄마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나의 아들은 나에게도, 할머니에게도 내가 했던 것처럼 행동해도 된다는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게 참 감사하다. 나의 아들은 나에게 '엄마의 자존감을 지켜주며, 엄마를 어른으로 대접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엄마를 치매에 걸린 보호가 필요한 노인으로 보지 않고, 나와 동등한 수평적 관계로 보도록' 해준다. '엄마를 아이 취급하고 무시하는 말과 행동을 할 때 제어장치'가 되어준다. 결국 난 누군가의 시선 없이는 감정을 조절하고, 존중의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걸 못하는 거였다는 걸 깨달았다. 요즘은 자존감이 한없이 무너진다. 아, 물론 타인에게는 가족에게 보다는 잘한다. 


사람은 누구나 동등하다. 나이가 어려서, 나이가 많아서, 병이 있어서, 장애가 있어서, 학력이 낮아서, 가난해서와 같은 편견 가득한 이유들로 차별해서는 안된다. 나는 엄마가 치매라는 병 때문에 기억력이 나빠지고, 인지능력이 낮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이유로 엄마를 차별하고 있다. 여전히 엄마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고, 판단할 수 있으며,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존재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존중받아야 함을 잊었다. 나이 든 어른들에게서 타인에게 공헌하고 있다는 느낌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엄마에게 빨래와 설거지를 미션으로 주곤 한다. 내가 편하자고 하는 건 절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병이 있어도 하고 싶은 것도 있고,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는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없다. 나는, 우리는, 사회는 어쩌면 배려라는 이름으로 차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리디아 지하는 인간관계는 같은 평면 위를 걷고 있을 뿐이기에, 그 사이에서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각자가 자기 자신의 출발점, 길, 목표를 가지고 있고, 자신이 바라는 대로 혹은 가능한 형태로 앞서거나 혹은 천천히 뒤에서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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