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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Nov 21. 2023

날쌘 종마의 속사정

엄마의 발을 묶어버린 파킨슨병 ‘지팡이 & 구루마’

    

 합가 전 엄마가 살던 집은 약간의 언덕이 있고, 뒤로 수리산이 둘러싸고 있어 공기가 좋은 곳이었다. 언덕을 따라 내려오면 시장까지 걸어서 15분, 엄마의 일터까지는 30분 정도 걸렸다. 엄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늘 걸어 다녔다. 키가 작고 덩치가 있는 편이어서 날래보이지 않는데 걸음이 매우 빠르다. 집에서 요리하다 재료가 없으면 집 앞 마트가 아닌 시장까지 걸어가서 재료를 사 오곤 했는데 내가 집 앞 마트에 다녀오는 거랑 비슷한 시간이(집 앞 마트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 걸린다. 바람에 휘날리는 빠글빠글한 파마머리(우리나라 노년기 여성들의 공통 헤어스타일로 미풍 따위에 휘날릴 머리가 아니다.)와 바삐 움직이는 두 다리를 보면 꼭 날쌘 종마 같다. 걷기, 아니 움직이기를 진심으로 싫어하는 나와 다닐 때는 늘 답답해하셔서 어느날은 시장에 가는데 나는 버스, 엄마는 도보를 택한 적도 있다. 그럴 때도 도착시간은 같다.   

   

 결혼 후 친정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살게 됐다. 버스로 오게 되면 한 번 갈아타야 해서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언젠가 발에 깁스를 두 달 정도 한 적이 있는데, 엄마는 매일 우리 집에 와서 밥을 차려주고, 청소해주고 돌아갔다. 엄마의 부지런함은 감히 내가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경연에 빠진 적이 없는 세종대왕의 부지런함과 견줄 수 있을까? 가끔 엄마가 우렁각시는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한 번은 20kg짜리 쌀을, 어떤 날은 고구마 한 포대를, 단감 한 박스를 집 앞에 가져다 놓고 간 적도 있다. 물론 버스를 타고 온 건 두말 할 것도 없다. 무거운 걸 들고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 엄마의 답답함에 화도 내고 짜증도 냈다. 내가 가지러 가면 될 것을 힘들게 다니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의 부지런함은 타고난 천성이자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원래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정신없이 일만 하며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뭐든지 빨리 끝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하루를, 마음을 이해하고자 한 적은 없다. 엄마는 그냥 매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엄마의 발이 묶인 이제서야 엄마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엄마의 부지런함을 이해하려면 엄마의 일생을 함께 돌아봐야 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이어져 왔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지금의 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면 온전히 한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남의 사정을 잘 헤아리기 위해서는 궁금해해야 한다. 궁금하기 위해서는 관심이 있어야 한다. 부끄럽지만 난 엄마에게 관심이 없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엄마가 살아온 과거와 생각과 마음에 관심이 없었다.      


 엄마의 발이 묶이고 나서야 엄마의 부지런함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렸을 적 원가족을 잃어버렸다. 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갔다가 손을 놓쳤고 홀로 살아왔다. 어린 소녀가 홀로 연명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부지런함’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일을 하고, 늦게 잠들어야 했던 시절을 보냈다. 아빠와 결혼하고 나서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먹고 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일을 해야 했다. 사정이 좀 피나 싶을 즈음 아빠가 암에 걸렸고 모아놓은 재산은 거의 다 치료비로 들어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두 시간씩 달려가 아빠 간병을 했다. 그때 엄마의 시간은 어땠을까?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난, 늘 현관 앞에 앉아 길을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깜깜해질 때까지 땅을 파고, 돌을 던지며 엄마를 기다리다 엄마가 보이면 신이 나서 뛰어가 안겼다. 깜깜해져도 엄마가 오지 않으면 집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잠이 들었다. 그때 나의 외로움이 너무 커서 엄마의 마음은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때 엄마의 얼굴, 표정, 목소리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늘 노을을 뒤로하고 언덕을 걸어 올라오던 실루엣만 기억이 난다.      


엄마는 원래 부지런한 사람이었을까? 부지런해지고 싶었을까? 부지런해서 좋았을까? 

엄마는 원래 걷기 대신 택시 타는 것을 좋아하고, 허리가 아플 때까지 늦잠을 자며 배달음식을 즐기는 게으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게으름이 100% 아빠에게서 유전된게 아니라는 전제하에 꽤 근거 있는 추측이다. 사실 요즘 엄마는 거의 누워있는 시간이 많다. 씻는 것도 밥 먹는 것도 귀찮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책망한다. “내가 왜이렇게 게을러졌지? 이러면 안되는데...”라고 말이다. 엄마의 병 때문인지, 이제는 먹고 사는 것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어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엄마의 부지런함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엄마의 부지런함은 ‘나 좀 봐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엄마의 부지런함은 학습된 것이었다.      


 어느날 찾아온 파킨슨씨는 엄마의 발을 묶어버렸다. 엄마는 이제 절대 빠르게 걷지도, 뛰지도 못한다. 지팡이가 있어야 짧은 외출을 하고, 구루마가 있어야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다. 파킨슨씨는 엄마를 괴롭히러 찾아온 게 아니라 쉬어가게 해주러 찾아온 손님이다. 80년을 빠르게 걷고, 뛰고, 숨가쁘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주변 풍경도 보며 천천히 걸으란다. 80년을 다른 사람을 이고 지고 가느라 힘들었으니,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쉬어가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엄마는 쉬지 않을 테니 자기가 찾아온 거라 조용히 속삭인다. 엄마의 병증을 합리화하거나 왜곡하려는 악마의 속삭임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엄마가 쉬어갈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하다. 다만, 엄마가 자존감을 지켜갈 수 있을 정도로만 쉬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천천히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지팡이와 구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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