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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Nov 09. 2023

엄마, 어디까지 더 과거로 갈 작정이야?

현재의 기억을 담보로 떠나는 엄마의 과거여행

   

공상만화, SF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나의 최애템은 타임머신이다. 영화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를 몇 번이나 봤는지 셀 수가 없다. 시간을 과거로 돌리는 기계나 자동차가 없어도 과거로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어바웃 타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생 영화이다. 살아가다 보면 실수하기도 하고, 후회할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실수를 바로잡는다면 TV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완벽한 인생을 살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생긴다면 친구가 고액 학습지 수업을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며칠을 울고불고하며 아빠를 졸라 몇백만 원을 결제했던 그 날로 돌아가 결제를 막고 싶다. 고액의 학습지 때문에 성적이 안 오른 게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했던 사람을 지독히도 짝사랑했던 그때로 돌아가 나를 말리고 싶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날로 돌아가 사랑한다고 말하며 꼭 안아드리고 싶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후회에서 출발한다. 실수에서 오는 후회, 무지했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 소중한 것을 되돌리고 싶은 후회 같은 것이 출발선이다. 누구나 후회하는 삶을 살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그리며 살아간다.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나 그렇다고...   

   

 엄마는 달랐다.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꿈꾸기보다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뭐든지 척척 잘 해내는 맥가이버 같던 엄마는 결국 방법을 찾아내 과거로 여행 중이다. 못해내는 게 없던 엄마였지만 이런 것까지 가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마는 어제로 떠났던 여행을 한 달 전으로 다녀오기도 하고, 40년 전으로 갔다 오기도 한다. 여행 중일 때 엄마는 당시의 모습이 된다.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 배를 곯으며 고생했어도 몸은 건강했던 그때 모습이다. 40년 전에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말하며 당장에 전화 통화라도 할 기세다. 


과거로 떠나는 여행은 꽤 에너지가 많이 드나 보다. 현재의 기억을 연료로 쓴다. 그래도 여행가는 만큼 비례해서 지불하지는 않나 보다. 한 달 전으로 다녀와도 몇 시간 정도의 기억만 사라지는 걸 보면 말이다. 엄마는 어떤 게 후회스러워서 과거로 갈까? 뭘 되돌리고 싶은 걸까? 아니면 현실이 버거워 과거에서 살고 싶은 걸까? 과거로 다녀온 사실조차 기억에 없는 엄마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여행 경비를 지불할수록 점점 현실을 잊어가는 엄마를 보면 무서워진다. 여행에서 돌아오지 않을까 봐, 내가 없었던 시절에 머물며 나를 기억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 살가운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나는 짜증과 화로 무서움을 표현한다. 

“엄마, 왜 자꾸 기억을 못 해!”, 

“아까 말했잖아.”

“그게 언제 적인데 지금 얘기하고 그래”

“기억하려고 노력 좀 하라고!”

이런 말들로 엄마의 여행을 망쳐버린다. 차마 엄마의 기억이 없어질까 봐 무섭다고 말은 못 한다. 입 밖으로 뱉는 순간 현실이 될 것 같다.    

  

경도인지장애나 치매초기에는 기억력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습니다. 흔히 옛날기억은 잘하는데 최근에 있었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물건을 가지러 갔다가 잊고 그냥 온다든지, 최근 있었던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세한 부분을 기억하기 어려우며, TV에서 보거나 들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손주들의 이름을 틀리게 부르거나 청력이 저하된 것처럼 남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계속해서 다시 묻는 것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치매초기에는 건망증처럼 진행되지만 서서히 새로운 정보의 등록, 저장, 재생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후 치매가 더 진행하면 오래전에 습득한 장기기억도 잃어버립니다. 알츠하이머병의 기억 장애는 해마의 기능장애로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기 때문에 초기에는 옛날에 저장된 기억은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한치매학회-


 나의 독설은 엄마의 여행을 중단시키고 현실로 데려오는 역할을 한다. 주춤거리고, 주눅들고, 눈치보는 엄마가 되어 입을 다물기는 하지만 어쨌든 현실에 머문다. 독설은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상처만 남긴다. 엄마를 현실에 잡아두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이제 그만 해도 된다고 말해줘야겠다. 이제 남은 시간은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자고 말이다. 


엄마의 과거 여행이 짧은 여행으로 끝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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