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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Oct 27. 2023

나는 오늘도 엄마의 기억과 손잡습니다.

치매 걸린 호랑이

“초기 치매입니다.”     

 2층에 위치한 진료실의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반짝인다. 반짝이는 햇살은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표정의 의사를 비치고, 햇살이 닿지 않는 의자에 앉은 엄마는 지그시 눈을 감고 앉아 있다. 따뜻한 봄날, 정원에 앉아 일광욕하는 사람처럼 평온해 보였다. 그런 엄마 옆에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처럼 서 있던 나는 충격도, 의연함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슬쩍 바라본 엄마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엄마를 동물로 비유한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호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엄마는 늘 당당했고, 당찼다. 젊은 시절 가난해서 쌀밥을 먹지 못하고 물로 끼니를 때울 정도였던 부모님은 50대에 신도시에 아파트를 장만했다. 5년 뒤에는 융자를 다 갚았고, 아빠는 차를 샀다. 그 뒤에는 엄마의 악착같음이 큰 몫을 했다. 아빠는 사람을 잘 믿어서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받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엄마는 득달같이 달려가 빚을 받아오곤 했다. 눈앞의 먹이를 하이에나가 훔쳐 달아나면 날쌔게 쫓아가 먹이를 탈환해 오는 호랑이처럼 말이다.     

 어릴 적 계부로부터 학대받고 자란 아빠는 화가 나면 집안 살림을 부수고, 엄마와 싸웠다. 아빠의 폭력에 엄마는 지지 않고 달려들어 함께 싸웠다. 부부가 머리채를 잡고 서로 놓으라고 소리치는 모습, 한 명은 주먹질하고, 한 명은 물어뜯으며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모습, 온 동네 사람들이 달려와 뜯어말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엄마는 호랑이 같다.’고 생각하며 존경스럽게 바라봤다. 어떨 때는 호랑이와 함께 피신하기도 했다. 앞집 대문 뒤에 숨어 아빠가 사그라지기를 기다리며 동지애와 연대감을 느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해 보이는 호랑이가 도망을 가고, 나와 함께 숨어 숨죽이고 있는 것을 보며 연민을 느꼈다.    

 

 그나마 감사한 건, 아빠는 나에게는 폭력을 쓰지 않았다. 무남독녀 외동딸이라 소리 한 번 안 지르고 귀하게 키웠다. 대신 엄마가 폭력을 행사했다. 외동딸이기 때문에 버릇없게 자라면 안 된다고 정말 많이도 맞고 자랐다. 그럴 때도 난 엄마가 ‘호랑이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 힘없는 초식동물인 나를 잡아먹으려는 육식동물 ‘호랑이’. 물론 엄마는 날 잡아먹지 않았고, 오히려 사랑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사랑은 나를 잘 키우는 것이었고, 그 표현방식이 폭력이었을 뿐이다. 가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지금 같으면 엄마는 아동학대로 감옥 갔을 거야. 아마 징역 30년은 받았을걸?” 어렸을 적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었던 폭력에 대한 상처를 그렇게라도 꺼내 보지만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엄마는 초원의 질서를 잡아야 하는 호랑이니까.   

  


 내가 엄마의 팔을 툭 건드리자 엄마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의사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진료실을 나와 약국을 거쳐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엄마와 일상의 이야기를 나눴다.

“밥이 없던데, 밥 안쳐놓고 올 걸 그랬다.”,

“난 다이어트 중이라 밥 안 먹을 거야.”

“그래, 너 임신한 것 같아. 쌍둥이냐?”

“아~ 그래서 안 먹는다고!”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며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을 바라보다 눈물이 났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 문제가 생겨 기억이 조금씩 없어지고 있다는 의학적 진단을 받은 날도 아무 일 없이 스쳐 지나간 어제와 다름없다는 사실이 서글퍼졌다.      


엄마가 의사 선생님의 판결을 제대로 들었는지 알아야 했다.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는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엄마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엄마, 치매래.”,

“나, 치매래? 어쩐지 맨날 까먹는다 했다.”,

“그치? 맨날 까먹는 게 예사롭지는 않았어.”

“치매구나. 너 힘들게 하면 안 되는데…. 어디 갖다 처넣어”

“엄마, 어디 갖다 처넣으려고 해도 돈 많이 들어. 그냥 여기 있어.”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은 어이가 없는 얼굴로 우리 모녀를 쳐다본다. 엄마랑 나는 목청 높여 크게 웃으며 새로 받아온 엄마의 치매약을 어디에 보관할 것인지 토론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의사 선생님의 전문적 소견에 따른 판결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자신에 대한 판결을 들으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누구보다 영리하고, 기억력이 좋고, 두뇌 회전이 빨랐던 자신의 말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슬펐을 수도, 억울했을 수도, 무서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아무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뇌동맥류 진단을 받았던 그날처럼.      

 어느 날부턴가 엄마는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다. 날짜와 요일을 헷갈리고, 계속 가던 장소를 못 찾기도 했다. 약 먹은 것을 잊어버리고 또 먹고, 세탁기 쓰는 법도 계속 다시 물어본다. 온 집 안을 매일 대청소하던 엄마 방은 머리카락과 먼지가 쌓여가고, 옷을 갈아입거나 씻기를 싫어한다. 질문을 하면 대부분 “몰라”라고 먼저 대답하고, 돈을 어디에 썼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평소에는 손도 대지 않던 군것질을 하고, 40년 전에 다녔던 회사 얘기를 어제 일처럼 얘기한다.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 내가 아는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호랑이처럼 초원을 호령하던 엄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결정하지 못해 늘 묻곤 한다. 치매 걸린 호랑이는 종이호랑이가 되어가고 있다.      


종이호랑이가 되어버린 엄마 앞에서 20년차 사회복지사인 나는 심한 무력감에 빠졌다. 치매 어르신을 많이 만났었고, 보호자를 위한 상담 경험도 풍부하다. 이 세계를 훤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단단한 착각이었다. 그 모든 경력과 경험이 무색할 만큼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현실을 부정하며 버티는 여느 보호자들과 꼭같은 표정으로 종이호랑이가 된 엄마를 멍하니 바라본다.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출발한 엄마의 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사회복지사도 요양보호사도 아닌 그저 엄마의 딸로서 말이다. 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시험 문제라고 한다면 이건 완벽한 킬러문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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