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대청소하던 엄마의 사라져가는 위생관념 ‘엄마, 좀 씻자’
“아! 엄마 쪼옴!!!! 잠 좀 자자!!!”
토요일 새벽 5시만 되면 온 집 안에 청소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청소기의 마지막 목적지는 내 방. 내 방문 앞에서 청소기는 계속 윙윙~ 울어댄다. 나를 깨워 대청소에 동참시키려는 엄마의 작전이다. 이때 타이밍이 중요하다. 소중한 주말 잠을 조금이라도 지키려다 늦게 일어나면 등짝 스매싱을 맞기 딱 좋다.
일요일 새벽 5시면 방문이 벌컥 열리고 창문이 열린다. 목욕탕에 가는 날이다. 매주 때를 벗기지 않으면 안 되는 엄마의 강박적인 습관이다.
엄마가 건강했던 그때는 매주 의식처럼 진행되던 청소와 목욕이 너무 귀찮고 싫었는데, 엄마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는 지금은 그때가 너무 그립다.
우두커니 앉아 TV를 보고 있는 엄마에게 말을 걸러 방에 들어섰다. 순간 코를 찌르는 냄새.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어르신들 가정방문 갈 때마다 맡던 그 냄새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고, 적든을 떠나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집에 공통적으로 나던 그 냄새! (물론 안 나는 집도 많다.) 유난히 냄새를 잘 맡는 나는 이런 냄새 공격에 굉장히 취약하다.
“아..”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자, 엄마가 물어온다.
“왜?” 순간 망설였다.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리 엄마는 꽤 자신에 대한 평가에 객관적인 사람이다. 나에게도 그 기준을 적용해서 상처 입은 적도 많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너 입냄새 나!”라고 말하는 건 기본이고, 외모에 대한 지적도 서슴치 않는다. 그런 엄마의 내공을 믿기로 했다.
“엄마, 방에 냄새나.”
“무슨 냄새? 안 나는데? 네가 예민해서 그래.”
“아니야, 혼자 사는 노인 냄새 나. 심해.”
엄마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하더니 “그러네. 좀 나네.” 라고 말하곤 다시 TV로 시선을 돌린다.
“엄마, 씻어.”
“싫어. 귀찮아. 늙으면 원래 냄새나는 거야. 그리고 나 좀 전에 씻었어.” 뻔한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우리 엄마의 장기 중 하나다.
결국 손자를 팔아서 설득에 성공했다. 엄마의 손자도 위생에 꽤나 민감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할머니가 이렇게 안 씻고 청소도 안 하면 손자가 어떻게 생각하겠냐, 보고 배운다. 등등의 말들을 쏟아내고 나서야 엄마가 씻기로 마음먹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씻고 나와서 엄마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아~ 개운하다! 목욕탕을 가야하는데 혼자 찾아갈 수가 없어. 여기 목욕탕이 어디야?"
엄마는 아직 목욕을 하고 싶어한다. 뜨끈한 탕에 들어가 피로도 풀고, 세신도 하고 싶어한다.
엄마는 이제 목욕탕을 혼자 찾아갈 수 없다. 여러번 같이 다녀왔는데도 길을 찾지 못한다. 1년 밖에 살지 않은 낯선 곳이어서인지, 치매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루에 한 번 샤워는 기본이고, 여름에는 하루에 몇 번씩 샤워하던 엄마는 이제 잘 씻지 않는다. 씻다가 넘어질까 봐 무섭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 게 이유이다. 빨래를 하루에 한 번씩은 돌리던 엄마는 옷을 잘 갈아입지 않는다. 엄마의 위생관념이 조금씩 사라지는 걸 보며 엄마가 같이 사라지는 것 같아 무서워진다. 아빠가 갑자기 사라졌던 2년 전 10월의 느낌이 떠오르며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도, 아빠도 없는 느낌은 어떤걸까? 꽤나 독립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나는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온전한 내 편이 사라졌을 때를 상상해보면 두려움이 앞선다. 엄마가 온전히 엄마를 지키며 남은 생을 편안히 살아갈 수 있게 돕고 싶다.
딸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하며 엄마는 자유를 잃었다. 씻고 싶을 때 씻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자유. 아침 출근길에 차려놓는 아침 식탁에 함께 해야 하고, 씻고 싶어도 씻고 나왔을 때 사위나 다 큰 손자와 마주칠까 불안한 마음에 사람이 없을 때 씻어야 하는 불편함. 그런 불편함이 엄마를 더 안 씻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곳에서 생활을 시작한 엄마를 더 배려하지 못한 나의 잘못인 것 같아 미안해진다.
이제 13살 아들에게 양치해라, 샤워해라 잔소리할 때 83살 엄마도 추가됐다.
“아들! 엄마!! 양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