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삶이 바뀐 순간》

『가문비나무의 노래』 리뷰 3

by 지경선

3. 거룩한 불안과 조화로운 모순 – 삶을 울리게 하는 긴장감


이 책은 곳곳에서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의 조화를 강조합니다. 특히 ‘거룩한 불안’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현대인은 흔히 마음의 평화를 최고 가치로 내세우지만, 슐레스케는 “요즘 마음의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대세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소명은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무심한 평온보다 거룩하고 만성적인 불안이 낫습니다.” 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진정한 소명이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만 두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을 애써 외면한 채 얻는 평온은 일종의 무관심한 평온이겠지요. 오히려 거룩한 목적은 우리를 계속 긴장하게 만들고, 더 나은 방향으로 흔들어 깨웁니다.


나태하고 안일한 안정감보다, 뜻을 따라 가며 느끼는 거룩한 불안감이 우리의 삶을 깨어 있게 하고 성숙하게 한다는 통찰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불안을 다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슐레스케는 관계 맺음과 공동체 속에서 그 해법을 찾습니다.


우리가 흔히 신앙심이나 삶의 자세를 따질 때 개인의 신념이나 교리를 떠올리지만, 그는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받아들인 교리가 아니라 우리 삶에 얽힌 관계들입니다” 라고 일깨웁니다.


결국 내가 맺는 인간관계와 공동체 안에서의 삶이 내 신앙과 인격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각자 따로 평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함께 불안을 감당하는 공동체가 건강한 울림을 냅니다.


특히 타인에 대한 존중에 관해 책에서 언급된 부분은 내 마음에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가 나와 똑같아지기를 바라지 않고, 그의 소명과 장점과 능력으로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삶의 모습이 달라도, 상대의 고유한 부르심과 강점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진정한 존중이라는 겁니다. 나만 옳다고 여기며 상대를 나에게 맞추려는 교만을 경계하라는 것이지요.


책에서는 “자기 자신이 세상에 전부인 양 행동하지 않기,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교만에 빠지지 않기”처럼 관계 속에서 피해야 할 태도를 짚어주는데, 참으로 뜨끔한 충고였습니다.


더불어 서로 다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의식적으로 서로를 위해 사는 삶이야말로 ”미학적 사치가 아니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가도록 설계된 존재이며, 거룩한 불안마저도 서로를 통해 위로받고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조화로운 대립’이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것도 눈에 띕니다. 얼핏 역설 같지만, 사실 진정한 조화는 충돌이나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 “대립하며 존재하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두 파장이 만나 입체적인 화음을 이루듯, 조화는 때로 반대되는 요소들이 함께할 때 더 빛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실제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들은 “모두 규칙적이고 정렬된 패턴과 낯설고 불확실한 패턴을 함께 지닙니다.” 익숙함과 새로움, 질서와 혼돈이 적절히 어우러질 때 비로소 감동이 탄생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곧 우리 삶에서도 안정과 도전, 신앙과 의심, 전통과 변화 같은 상반된 요소들을 균형 있게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고 느꼈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안전만을 추구하면 성장의 모험을 포기하는 모순에 빠집니다.


“발전을 원하면서 낯선 것에 거리를 두는 태도는 모순입니다”라는 지적처럼 말입니다. 낯선 것을 피하면 발견하고 성장할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버리기에, 삶의 울림은 반감될 것입니다.


“바이올린이 내는 좋은 음악의 비결은 모순에 있습니다.” 이 짧은 문장은 이 책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소리는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화려하면서도 따뜻한 음색의 모순적 조화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진리의 날카로움과 자비의 온화함, 은혜에 대한 믿음과 성실한 노력, 안식과 사명 같은 양면의 균형을 잡을 때 깊은 울림이 난다고 저자는 역설합니다.


책에서는 이를 두고 ”우리에게 약속된 것과 요구되는 것 사이의 건강한 긴장만이 울림 있는 삶을 가능케 합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약속과 내가 감당해야 할 노력 사이의 균형 잡힌 긴장이야말로, 마치 현악기의 팽팽한 줄처럼 삶을 울리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말이지요.


저자는 강조합니다. “은혜와 일이 균형을 이룰 때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은혜를 맹신하여 나태해지지도 말고, 자기 힘만 믿고 교만해지지도 말라는 경고처럼 들렸습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롭게 대립할 때 비로소 영적인 공명이 일어나니까요.


흥미로웠던 것은, 이런 가르침을 성찰하며 이냐시오 데 로욜라의 유명한 말을 소개한 대목입니다. “모든 노력이 쓸데없는 것처럼 기도하라, 모든 기도가 무용지물인 것처럼 일하라.” 기도와 일, 은혜와 노력이라는 상반된 자세를 동시에 취하는 것이 얼마나 건강한 모순인지 되새기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때로 혼란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지만, 슐레스케는 이처럼 영혼의 긴장감을 환영하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방해마저도 때로는 거룩한 인도로 받아들이라고 권하는 것처럼요. 책에서 “방해는 종종 거룩한 인도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방해받을 능력이 있어야 열린 마음을 지닐 수 있습니다.”라는 구절을 접하고, 나는 내 삶의 불청객 같던 방해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이 혹시 나를 더 넓은 세계로 이끄는 숨은 축복은 아니었을까 하고요.



삶의 울림은 단순한 균형이 아니라,

모순 속에서 공명하며 만들어집니다.


거룩한 불안, 낯선 도전, 서로 다른 존재들과의 긴장이

때로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삶을 다듬고 계신다는 표지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다음 글에서는

그 사랑받는 자만이 살아낼 수 있는 자유와

소명, 정체성,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읽고 삶이 바뀐 순간〉 4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