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몸, 그리고 삶의 지혜를 중심으로
김교빈 교수님의 동양철학 에세이1 인트로 부분을 읽고, 이 책의 본문을 읽기 전에 동서양 철학의 비교점을 제 나름데로 정리해보았습니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은 모두 인간의 삶을 해석하고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탐구해온 사유의 전통입니다. 그러나 두 전통은 동일한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서로 다른 맥락과 방법을 제시해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동양철학의 주요 주제들을 중심으로, 서양철학과의 비교를 통해 상호 보완적 이해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동양철학에서 시간은 순환적 리듬으로 이해됩니다. 달력과 절기의 변화는 농경사회에서 생존의 질서를 보장할 뿐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철학적 토대를 제공합니다.
동지는 가장 어두운 날이지만 동시에 빛을 기다리는 시작점이라는 사고는, 인간의 삶 역시 위기 속에서 전환의 가능성을 품는다는 통찰을 줍니다.
이에 비해 서양철학의 전통은 직선적 시간관을 강조해왔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기독교적 세계관은 창조에서 종말로 향하는 일직선의 역사를 상정하였고, 근대 과학은 이를 진보의 개념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따라서 서구의 시간은 축적과 발전의 개념과 결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날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를 앞두고, 순환적 시간관의 중요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철부지’라 불리는 존재는 계절과 절기를 알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이는 자연과의 단절을 통해 삶의 지혜를 잃어버린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동양철학은 여기서 다시 ‘지혜’를 일상의 감각적 경험에서 찾습니다.
서양철학에서도 유사한 논의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자각하는 것에서 철학이 출발한다고 했으며, 하이데거는 현대인이 ‘세계-내-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다만 동양철학은 무지를 극복하는 길을 자연과 몸의 감각을 회복하는 데서 찾는 반면, 서양철학은 대체로 이성적 성찰과 언어적 사유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달력의 차이를 다루는 대목에서 드러나듯, 동양 전통은 생활 세계와 밀착된 경험을 통해 질서를 세워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합리성의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농경사회에서 계절의 변화는 생존의 문제였으며, 따라서 이를 세밀히 기록하고 활용하는 것이 곧 합리적 선택이었습니다.
서양의 합리성은 수학적 정밀성과 보편성을 지향하였습니다. 그레고리력이 도입된 것도 농업적 필요보다도 교회력의 정합성과 천문학적 계산의 정확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동양과 서양이 ‘합리성’이라는 동일한 이름 아래 다른 생활 양식과 세계관을 구현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동양철학을 미신으로 치부하거나, 반대로 심오한 정신세계로만 과장하여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동양철학은 생활 속 경험과 몸의 감각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단순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동양철학은 추상적 개념 체계에 머물지 않고, 일상적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양철학 역시 실천적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행복을 실천적 덕의 습관에서 찾았으며, 스토아 철학은 일상 속에서 평정심을 지키는 삶을 강조했습니다.
다만 서양철학은 여전히 ‘보편적 원리’의 탐구에 무게를 두었다면, 동양철학은 개별적 상황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모색하는 방식에 더 주목했습니다.
동양철학에서 진리는 몸으로 열려 있다는 주장은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합니다. 몸은 단순히 영혼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세계와 만나는 통로이며 진리를 체험하는 장입니다. 계절의 변화, 기후의 리듬, 타인의 기운은 모두 몸을 통해 감지됩니다.
반면 서양철학은 전통적으로 이성과 언어를 중심에 두어왔습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선언하며 몸을 부차적인 것으로 두었고, 칸트 역시 경험을 이성적 범주의 틀 속에서만 정당화했습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 메를로-퐁티와 같은 현상학자들은 몸을 ‘살아있는 지각의 장’으로 재해석하면서 동양철학과 다시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열어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양철학은 과거 유산의 보존을 넘어 현재 삶을 새롭게 읽는 도구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동양철학은 오늘날 사회의 병리를 드러내고, 공동체적 지혜를 회복하는 살아 있는 철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서양철학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어왔습니다. 마르크스는 철학을 단순히 세계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를 변혁하는 도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푸코 또한 철학을 ‘삶의 기술’로 제시하며, 개인과 사회의 권력 관계를 새롭게 읽어내려 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은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만날 수 있는 공통의 과제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오늘날의 위기적 시대에는 상호 보완적 통찰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서양철학이 보편적 원리와 이성의 힘을 강조하였다면, 동양철학은 몸의 경험과 자연의 리듬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자 하였습니다. 두 전통은 배타적으로 대립하기보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대화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동양철학을 다시 읽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과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사유의 길을 여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