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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유감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 이야기장수

by GAVAYA

안녕하세요? <독서유감> 2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번째로 소개할 책은 <가녀장의 시대>입니다. 어디서 선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2023 젊은 작가 1위'로 꼽힌 이슬아 작가의 작품입니다. 저는 팝빵으로 KBS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듣는데요. 여기서 궁금한 분이 생기면 책도 사보곤 한답니다. 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소설류를 잘 읽지 않는 편이라 편식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기회가 있을 때 반드시 소설을 일종의 의무감으로 읽어 보는 편입니다. 소설만 읽으시는 분들도 꽤나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저는 아직 소설이 최애 섹션은 아닌 까닭입니다. CG로 보는 재미를 더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인데요. 언젠가는 영화 속 장면이 현실이 되겠지만 제가 살고 있는 지금 시점과는 거리가 멀어서인지 몰입이 잘 되지 않더군요. 하지만 이번 책은 좀 다른 느낌이어서 책을 읽으면서 느낀 몇 가지 생각을 여러분들과 나눠볼까 합니다.


지난해 이 맘 때쯤 나온 책입니다. 딱 1년 되었네요. <가녀장의 시대>라는 제목은 가부장의 시대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유교 문화권에 있었던 우리나라는 집안에서 남자가 1순위였죠. 모든 질서가 아버지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가부장을 넘어 가모장 시대가 되었죠. 아버지라는 존재는 집안식구 다음 그리고 애완동물 다음으로 순위가 언급될 만큼 바닥으로 추락했죠. 이 소설은 이것에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시대상을 반영하여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 곧 아버지다라는 콘셉트를 부여한 작품입니다. 그냥 상상 속으로만 그리 했다면 별 재미가 없겠지만 실제로 작가 본인이 아버지, 어머니와 그런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며 발생하는 에피소드와 스토리로 꾸며졌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모든 것보다 위에 있죠. 일명 '돈 많으면 형'이라는 말처럼 경제력이 모든 패권을 장악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가 정치를 앞도한 것은 꽤나 오래된 일이 되었고 모든 것이 돈의 위력 앞에 하나둘 무릎을 꿇고 있는 상황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최종의 보류, 마지노선이 바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마저도 이 소설에서는 격파를 당하고 있습니다. 딸은 집에서 전자담배를 뻐끔뻐끔 피울 수 있지만 아버지는 웃옷을 걸쳐 입고 앞마당으로 나가 담배를 필수 있는 식이죠. 집안 구성원의 경제력이 가내 위계구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신성한 충격을 주는 책이라는 생각입니다.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제가 추구하고 있는 제1의 가치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제1의 가치란 '세상에 옳은 것도 정해진 것도 없다'입니다.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 어른을 보면 인사해야 하는 것 등 우리가 예절이나 도덕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아니 어떤 문화권에서 지내는 사람들에 한정된 이야기일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응당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을 '예의 없다''싹수없다' 이런 말로 매도하는 일이 잦습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니지만 감정선을 건드렸다는 궁색한 이유를 대면서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가부장제도에서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언제부터 아버지가 집안의 중심이 되어 왔는가? 아버지를 집안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하고요. 그러다가 <결혼의 종말>이라는 아주 재미있었던 책이 생각났습니다. 모계 사회로 출발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부계 사회가 자리 잡는 과정에 대한 힌트가 그 책에 있었거든요. 바로 농경 사회가 시작되면서 남자들의 노동력이 여자들을 압도한 지점부터였죠. 각종 도구와 농경술이 발달하면서 잉여자본이라는 것이 생겼고 거기에 가장 많은 기여를 했던 아버지라는 사람이 집안에서 가장 큰 권력을 차지하게 된 것이죠. 십자군 원정 때 자신의 아내에게 정조대를 채우고 전쟁에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자들의 권력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선진국 미국에서조차 여자분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이 꽤나 최근의 일이라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녀장의 시대>라는 제목은 센세이션날(Sensational) 했습니다. 기존의 질서를 바꿔보겠노라는 작가의 다짐이 저에게 바로 전달되는 것 같았거든요. 작가는 그런 의도로 쓰진 않았겠지만 저는 자본주의와 경제권력이 소설을 읽는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작가가 뭘 제시했던 제 해석이 더 중요한 법이니까요. 권력관계의 뒤바꿈으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을 책으로 재미있게 엮어낸 것을 보면서 왜 이슬아 작가가 올해의 기대작가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네요. 드라마 제작을 꿈꾼다고 책에 언급했던데, 머지않은 시점에 영상화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낮잠 출판사의 대표, 모부의 딸, 누군가의 친구, 그리고 가끔 사랑을 생각하는 여자 등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저는 몇 가지 눈이 가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낮잠 출판사의 대표 부분에서는 내가 상상하는 글 쓰는 삶이 저런 거라면 돈 버는 작가가 되는 걸 꿈꾸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일명 생계형 작가, 책을 10권 이상 내 작가도 저리 살기 힘든 세상인데 그 나머지야 두 말하면 잔소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모두가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며 글을 쓰지만 실제로 그게 된다고 한들 그 삶이 지금처럼 맨땅에 헤딩하던 시절에 비해 낫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져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면 꿈을 좇다가 그 꿈이 미완성을 남는 삶이 꿈이 실현되고 더 큰 꿈을 꾸는 삶보다는 좀 더 편안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요.


<가녀장의 시대>가 도래하려면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작가는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식단과 청소 등을 보조해 주는 모부가 사라지는 시점을 걱정하죠. 언뜻 보면 경제력으로 권력 찬탈을 한 것 같지만 그 알량한 권력이란 게 권불십년이듯이 그 모부가 저 세상 사람이 되면 지속할 수 없는 구조잖아요. 그래서 소설을 읽으며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다음은 그다음은'이라고요. 지금의 시대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 일 것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에 가족 구성원들이 동의한 것뿐 가녀장의 시대가 도래해서 앞으로 쭉 사회가 이런 방식으로 갈 것이다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에 대한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깬 부분과 고착화된 집안 내 권력관계의 뒤바꿈을 현실 속에서 펼쳐나가면서 던져주는 몇 가지 메시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되네요.


우리의 고정관념 중 하나는 아빠는 돈 벌어오고 엄마는 음식을 하고 딸과 아들은 지 살길 찾고 식이잖아요. 그런데 드물긴 해도 본인의 성향이나 경제력 등에 따라 그 역할이 뒤바뀌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남자가 부엌일을 하는 집안도 있고 자녀들이 가사를 책임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가녀장의 시대>라는 소설이 저한테 던진 메시지는 애초에 그런 역할을 정한 것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는 너무 당연한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가족 구성원 누구든 일정 시점이 되면 아마도 성인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돌아가면서 밥을 차리면 되고 시간 나는 사람이 청소하면 되고 돈 잘 버는 사람이 가계를 운영하면 되고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또 가족 구성원 간의 합의를 통해 어떤 삶의 방식이든 꾸려 나갈 수도 있는 점도 잊어선 안 되겠죠. 각자 방에 살든 일주일에 한 번 보든 그걸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어 보며 손가락질하는 그런 일은 없어야겠죠. 하하하.


어떠신가요? 저의 두 번째 <독서유감>이 마음에 드셨나요? 소설 한 편 읽고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쓸 이야기가 많아진 것도 참 오랜만이네요. 또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은 할 수 없으나 좋은 책으로 선한 책으로 여러분을 찾아뵐 것을 약속드리면서 Se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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